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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으로 세상 본다” 박민수 교수, 시각 대체할 웨어러블 개발 연구 Nature 등재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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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교수(고분자시스템공학부)가 美 노스웨스턴대 존 로저스 교수 연구팀과 피부를 자극해 시각 등 다양한 감각을 구현하는 웨어러블 (Wearable·착용형) 기술을 개발했다. ▲ 박민수 교수(고분자시스템공학부)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Nature(네이처)에 게재됐다. Nature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지로 사이언스, 셀과 함께 세계 3대 학술지로 불린다. 노스웨스턴대 로저스 교수는 인체에 달라붙는 전자회로로 생체 정보를 얻는 바이오일렉트로닉스 분야 세계적 권위자다. 최근 로봇, 웨어러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등이 발전하며 인공감각 기술(햅틱·haptic) 분야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존 인공감각 기술은 인종이나 개인별로 기계적, 열적 자극을 느끼는 신경세포의 분포 차이가 있어 연구에 한계가 존재했다. 연구팀은 얇고 유연한 실리콘 필름 소재에 19개의 작은 자기 구동장치(actuator)를 육각형 형태로 배열한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했다. 넓은 신체 영역에 거쳐 자극 전달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기존의 연구 한계점을 보완했다. 웨어러블 기기는 피부에 부드럽게 부착할 수 있어 압력이나 진동, 비틀림과 같은 다중 촉각 자극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작은 배터리로 구동되고 에너지가 피부나 기기 내부에 저장돼 지속적으로 전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 연구팀은 촉각을 구현하기 위해 19개의 작은 자기 구동장치를 육각형 형태로 배열해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스마트폰의 3D 이미징 기능(LiDAR)을 활용해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부에 햅틱 패턴을 전달해 의미있는 형태의 ‘촉각 기반 시각’을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특히 이 기술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도 주변 환경에 기능적인 인식이 가능해져 시각장애인의 재활의학 분야에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피부 통합형 열 인터페이스 연구를 수행 중인 박 교수는 자기 구동장치의 진동에 의한 발열에 관한 분석을 진행했다. 박 교수는 발열에 의한 열 전달을 줄이고, 효율적인 촉감 전달을 위한 구동장치 소재 선정과 아날로그-디지털 신호 변환 등의 연구에 기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분야 최고 권위지 Nature(상위 0.4% 저널, IF=50.5)에 지난해 11월 게재됐다. 논문명은 “Bioelastic state recovery for haptic sensory substitution (촉각 감각 대체를 위한 생체 탄성 상태 회복)” 이다. 박민수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웨어러블 기기는 현실감, 몰입감 있는 다중 감각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및 가상현실(VR) 분야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재활의학 등 헬스케어 분야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단국대 #박민수교수 #고분자시스템공학부 #Nature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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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경주 대릉원, 인왕동 156-1·2호분 출토 신라유물』 [석주선기념박물관-이달의 유물⑭]

20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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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박성순)은 1967년 개관(전신 중앙박물관)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보급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은 약 4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구글아트앤컬처(Google Arts & Culture)를 통해 전세계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과 홍보팀은 공동으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석주선기념박물관-이달의 유물] 기획 특집 기사를 연재한다. 이달에 소개할 박물관 소장 유물은 『경주 대릉원, 인왕동 156-1·2호분 출토 신라 유물』 이다. 경주 인왕동 156-1・2호분은 1971년부터 진행된 ‘경주 종합개발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신라 고분 정화사업’이 진행되며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굴됐다. 고분 발굴 조사는 지난 1973년 7월 15일부터 8월 17일까지 정영호 교수(당시 박물관장)를 단장으로 이호영 교수(당시 박물관 연구원), 박영복 전 국립경주박물관장(당시 대학원생)을 비롯한 사학과 학생 34명이 참여했다. ▲ (왼쪽) 장충식 명예이사장(당시 총장)은 지난 1973년 조사 현장을 찾아 신라 고분 정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발굴조사단을 격려했다. (오른쪽) 고분 발굴조사 모습 당시 박물관 발굴조사단은 경주 미추왕릉 북쪽의 황남동 10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발굴조사단은 조선고적 연구회에서 1934년 이미 조사된 유적임을 확인하고 인왕동 고분으로 옮겨 발굴을 진행했다. 새로운 신라 왕릉급 고분을 발견, 인왕동 156-1호분 1973년 7월 15일 시작된 156-1호분 발굴조사는 봉분을 이루는 적석(積石)을 제거하는 일에만 15일이 소요됐다. 그러나 8월 3일 조사단의 기대와는 다르게 남벽에서 도굴(盜掘) 흔적이 확인됐다. 고분은 적석 목곽묘의 형태로 은제 과대(銙帶)를 비롯하여 토기 편과 유리구슬 등 22건 230점의 유물이 수습됐다. ▲ 경주 인왕동 156-1・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 2호분은 156-1호분을 발굴하던 중 북쪽 지하 30cm에서 적석의 일부가 노출돼 조사한 적석총이다. 7월 20일부터 8월 17일까지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서 묘는 적석목곽묘임이 확인됐다. 부장품은 △굵은 고리 금귀걸이 1쌍 △목걸이 △은제 과대 △둥근 고리 큰 칼(환두대도)편 △토기 등 167건 781점이 출토됐다. 고분은 출토 유물의 편년으로 보아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신라 최상위 계층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2023년은 경주 인왕동 156-1・2호분이 세상에 알려진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박물관은 문화재청, (사)대학박물관협회와 함께 ‘매장문화재 미 정리유물 보존 및 활용사업’을 통해 출토 유물의 복원 작업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이달의유물 #신라출토유물 #인왕동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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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초등특수교육, 서울·경기·인천 수석 휩쓸어” <br /> 교사 임용시험 95명 합격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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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인천, 수석 및 차석 합격자 7명 쾌거!! 우리 대학이 2025학년도 교사 임용시험에서 95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우리 대학은 서울·경기·인천에서 수석 합격 4명과 차석 합격 3명을 배출하며 인성과 실력을 갖춘 교원 양성 산실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수교육(초등) 분야는 서울·경기·인천에서 수석 합격을 휩쓸었다. 이어 ▲영양교육[경기, 수석 합격] ▲특수교육(중등)[서울, 차석 합격] ▲특수교육(초등)[인천, 차석 합격] ▲정보·컴퓨터[경기, 차석 합격]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영광을 차지했다. ▲ 우리 대학은 우수한 교원 양성을 위해 임용 고시반, 고시생을 위한 장학 및 기숙사 지원, 임용시험 대비 특강 등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홍보팀 자료사진] 선발 분야에 따라 ▲특수교육(초·중등) 41명 ▲체육교육 17명 ▲수학교육 13명 ▲과학교육 10명 ▲한문교육 9명 ▲국어·역사·영양·화학·정보컴퓨터 각 1명이 합격했다. 특히 특수교육과는 졸업을 앞둔 재학생 22명이 대거 합격하기도 했다. 합격자는 지역별로 ▲경기도 52명 ▲서울 24명 ▲인천 11명 ▲전북 2명 ▲강원·경남·경북·전남·충남·제주에서 각 1명씩이다. 서울·경기·인천 수석 및 차석을 석권한 특수교육과는 1971년 국내 대학 최초로 특수교사 양성을 위해 개설됐다. 특수교육과는 2025년 교사 임용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과 더불어 동문 다수가 최근 국내 대학 특수교육 분야 전임교원으로 임용돼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송만호 동문(순천향대 특수교육과, 특수교육과 01학번) ▲ 백지은 동문(단국대 특수교육과, 특수교육과 08학번) ▲이종우 동문(텍사스공과대학 특수교육전공, 특수교육과 10학번) ▲강성리 동문(한경국립대학 재활복지학부, 박사과정 14년 졸업) ▲박찬우 동문(백석대 사범학부, 박사과정 22년 졸업) ▲최민식 동문(강남대 중등특수교육과, 박사과정 20년 졸업)이다. 김원호 특수교육과 학과장은 “우리 학과가 국내 특수교육과 중 단연 최고 수준인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자랑스럽다”라며 “앞으로도 전문적인 커리큐럼으로 특수교사 및 특수교육 전문가를 배출해 우리나라 특수교육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안순철 총장은 “우리 대학은 우수한 교원 양성을 위해 임용 고시반, 고시생을 위한 장학 및 기숙사 지원, 임용시험 대비 특강 등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명실상부 교원 양성 명문 대학으로 바른 인성을 갖춘 우수한 예비 교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단국대 #사범대 #교사임용시험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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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 FISU 국제 학술대회 주관대학 선정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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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이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 FISU 국제 학술대회’(이하 학술대회) 주관대학으로 선정됐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원회)는 13일(목) 천안캠퍼스에서 위수탁 협약식을 갖고 우리 대학을 학술대회 주관대학으로 선정했다. △ 이창섭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백동헌 천안부총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는 2027년 8월 1일부터 12일까지 12일간 대전· 세종·충북·충남 4개 시·도 일원에서 개최되며, 18개 종목에 150여 개국 1만 5,000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학술대회는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 기간 중 4일간 개최된다. 전 세계 40여 개국 300명 이상의 대학생 및 스포츠 연구자가 참가할 예정이다. 기조연설, 패널토론, 논문발표 및 포스터 전시 등으로 구성되며, 스포츠 과학 및 대학 스포츠의 미래를 논의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협약을 통해 우리 대학은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및 조직위원회와 협력하여 학술대회의 기획·운영을 총괄하게 된다. 참가자 모집, 기조연설자 초청, 논문 심사 및 행사 운영 등 학술대회 준비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 협약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왼쪽부터 조직위원회 이규석 문화부장, 이태석 문화홍보본부장, 이창섭 부위원장, 우리 대학 백동헌 천안부총장, 전용배 스포츠과학대학장, 장지석 단국대 FISU 국제학술대회 조직위원장, 김애랑 교수, 김왕수 총무처장) 안순철 총장은 “단국대가 국제 학술대회의 주관대학으로 선정된 것은 그동안 국제 스포츠 학문 분야에서 쌓아온 연구 역량과 경험이 높이 평가받은 결과”라며 “학술대회를 통해 전 세계 스포츠 연구자 및 대학생들이 학문적 교류를 활발히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창섭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국제 스포츠 연구 및 교육 역량을 갖춘 단국대학교와 함께 학술대회를 운영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단국대와 긴밀히 협력하여 성공적인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나아가 충청권이 글로벌 스포츠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의미 있는 학문적 유산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은 국내 최초 매스게임 연출,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릭픽’의 국제 스포츠과학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대학 스포츠의 메카로 성장해왔다. 이날 협약식에는 백동헌 천안부총장, 이창섭 조직위원회 부위원장과 전용배 스포츠과학대학장, 장지석 FISU 국제학술대회 조직위원장, 김애랑 교수 등 관계자들이 참석해 학술대회의 성공적인 운영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단국대 #스포츠과학학술대회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윤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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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설렘 가득한 만남’ 2025 동아리 알림제 열려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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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가득한 동아리 알림제가 2일간 열렸다. 알림제는 3월 12일~13일 양일간 죽전캠퍼스 노천마당과 천안캠퍼스 대운동장에서 진행됐다. 다양한 동아리가 참여해 새로운 만남이 가득했던 현장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죽전캠퍼스 △ 죽전캠퍼스 동아리 알림제 전경 △ 학생들이 동아리 ‘광고친구’의 카피라이팅체험 △ 동아리 ‘모닥불’의 기타 체험 △ 외국인 학생이 동아리 프로그램 체험을 하고 있다. △ 다양한 동아리의 공연도 진행됐다. ○천안캠퍼스 △ 천안캠퍼스 동아리 알림제 전경 △ 동아리 ‘A.M.I’의 드럼패드 체험 △ 취창업지원처 등 교내 부서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 동아리 ‘코디악 베어즈’의 턱걸이 체험 △ 재학생 홍보대사 ‘날개단대’ 캐릭터 단웅이와의 촬영 이벤트 #단국대 #동아리 #알림제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박원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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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구글·네이버 등 세계적 IT기업과 손잡고 AI 스마트시티 인재 양성 나선다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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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이 아마존·구글·네이버 등 세계적 IT기업과 손잡과 AI 스마트시티 인재 양성에 나선다. 지난 12일(수) 죽전캠퍼스에서「AI 스마트시티 인재 양성 공동협력 간담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간담회에는 안순철 총장, 백동헌 천안부총장을 비롯해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클라우드(Google Cloud) ▲네이버(Naver) ▲엔에이치엔클라우드(NHN Cloud) ▲에스케이플래닛(SK Planet) ▲세일즈포스(Salesforce) ▲다쏘시스템(Dassault Systemes)▲에스케이텔레콤(SK Telecom) ▲유니티(Unity) 등 AI분야를 선도하는 국내외 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해 AI 스마트시티 인재 양성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 안순철 총장(가운데)이 AI를 선도하는 국내외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간담회에서는 ▲AI 기반 스마트시티 기술 발전 방향 ▲산학협력을 통한 인재 양성 방안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방안 ▲공동 연구 및 국가사업 프로젝트 추진 가능성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기업들은 우리 대학과의 협력 모델을 제안하며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간담회는 천안시가 추진하는 스마트도시 조성사업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RISE)사업과의 연계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백동헌 천안부총장은 “단국대는 천안시와 협력하여 AI 및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시티 솔루션을 연구·개발하고,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여 지역 산업과 도시 발전에 기여할 계획”이라며 “간담회는 천안시 스마트도시 조성사업을 위해 기업들이 다양한 기술지원과 협력 방안을 공유한 뜻깊은 자리였다”라고 밝혔다. 안순철 총장은 “우리 대학은 천안캠퍼스 개교 후 지난 47년간 지역사회 상생을 위한 산업생태계 구축 및 지·산·학·연 클러스트 구축에 매진해 왔다”라며 “이번 간담회를 통해 단국대는 국내외 유수 기업들과 함께 AI 스마트시티 및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RISE) 인재 양성을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국대 #AI스마트시티 #지역혁신중심대학지원체계 #RISE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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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전캠퍼스 학생식당 「1947_commons」, 개막식 개최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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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전캠퍼스 학생식당이 새 단장을 마치고 「1947_commons」라는 이름으로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2일 오후 2시 학생식당 앞에서 개막식 행사가 개최됐다. △ 학생식당 「1947_commons」 개막식 참가자들이 테이프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준혁 총학생회장, 문예진 대학원 총학생회장, 조영식 직원노동조합위원장, 이영희 교수회장, 장호성 이사장, 안순철 총장, 장인수 ㈜올리브홀딩스 대표, 김오영 교학부총장, 김재일 대외부총장, 조찬홍 총무인사처장) 이날 행사에는 장호성 이사장, 안순철 총장, (주)올리브홀딩스의 장인수 대표를 비롯한 교내외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사업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테이프 커팅식, 내부 시설물 안내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새롭게 단장한 학생식당을 둘러보며 최신 시설과 다양한 메뉴 구성을 직접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롭게 문을 연 학생식당 「1947_commons」는 1,337㎡에서 1,505㎡로 확장되었으며 최대 600명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푸드코트 형식으로 총 10개의 매장과 1개의 카페가 입점해 학생들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할 예정이다. 식당의 명칭인 「1947_commons」는 우리 대학의 창학연도인 1947년과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commons’의 조합으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 죽전캠퍼스 학생식당 「1947_commons」 전경 운영시간은 학기 중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 메뉴 가격은 3,000원대부터 1만 원대까지 책정되어 있어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오는 17일(월) 부터는 ‘천원의 아침밥’ 프로그램도 시행될 예정이다. 안순철 총장은 “이번 새 단장을 통해 학생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단국대 #죽전 #학생식당 #리뉴얼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박원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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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셔틀버스 증차 등 개강 맞아 새 단장한 천안캠퍼스

20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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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캠퍼스가 새 학기를 맞아 셔틀버스 증차 및 학습·휴게 공간 조성 등 새 단장을 마쳤다. ■ 셔틀버스 추가 증차 새 학기를 맞아 캠퍼스와 두정역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추가로 증차됐다. 천안 학생팀은 학생들의 원활한 등교를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개강을 맞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천안 학생팀은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두정역에서 아침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추가로 2대 증차했고, 오후 하교 버스도 1대 증차했다. 학생팀은 학생들의 원활한 등교를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박지은 학생(의생명공학전공)은 “두정역 셔틀버스가 증차돼 등교 환경이 훨씬 쾌적해질것으로 기대된다”며 “등교할 때마다 셔틀버스 대기 줄이 길어 시간이 촉박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 증차로 인해 배차 간격이 줄어든다면 훨씬 편리하게 통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새 학기를 맞아 천안캠퍼스에 눈에 띄는 변화가 진행 중이다. ‘공간’ 혁신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고, 휴식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강의실부터 휴게시설까지 새 단장에 나섰다. 학생회관에는 헬스장이 새롭게 구축됐고 교내 전 건물의 강의실 책걸상 교체 사업이 완료됐다. 유학생과 율곡혁신칼리지 학생들을 위한 라운지도 새롭게 개설됐다. 사회과학관에는 바이오헬스 라운지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고 5월에는 우리 대학 기념품샵인 단국스토어가 오픈할 예정이다. ■ 융복합 혁신 학습 공간 및 학생 휴게 공간 조성 재학생들의 창의적 학습공간과 휴게공간이 대폭 늘어났다. 재학생 및 율곡혁신칼리지 학생들을 위한 융복합 혁신 스페이스가 인문과학관 223호에 새롭게 구축됐다. 융복합 전문 역량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학분문야 교류의 장으로 활용될 혁신 스페이스에는 자유롭게 공부하며 토론할 수 있는 회의 공간과 휴게 공간을 갖췄다. △ 융복합 혁신 스페이스 전경 사회과학관에는 기존의 바이오헬스 라운지가 조성된다. 사회과학관 1층 기존 편의점 및 경비실 공간에 새롭게 구축될 바이오헬스 라운지는 스터디룸, 그룹존, 커뮤니티 라운지로 구성되며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바이오헬스 라운지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으로 4월 초순에 오픈할 예정이다. △ 바이오헬스 라운지조감도 예술대학 실습실도 대폭 개선됐다. 미술학부 강의실 및 실습실의 노후화된 냉·난방기가 전면 교체됐고 뉴뮤직학부 학생들의 개인 연습이 가능하도록 개인 실습공간도 새롭게 구축됐다. ■ 학생회관 헬스장 4월부터 운영 △ 학생회관에 갖춰진 헬스장 천안캠퍼스 학생들의 체력 증진을 위한 헬스장이 학생회관 211호에 154㎡ 규모로 꾸며졌다. 러닝머신 3대, 벤치프레스, 파워랙 등의 운동기구가 배치됐다. 헬스장은 추가적인 장비 설치와 정비를 거쳐 4월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 야외공연장 새 단장 △ 야외공연장이 새롭게 단장됐다. 야외공연장도 새롭게 단장했다. 지난 2001년에 지어진 야외공연장은 시설물이 노후화되어 학생들이 사용에 불편함을 호소해왔다. 리모델링을 통해 관객석과 무대를 전면 교체했고 야간에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명도 추가 설치했다. 안서호를 바라보고 있는 야외공연장은 동아리 공연, 공개 강연 등 다양한 행사에 활용될 예정이다. ■ 캠퍼스 간 복수전공 수강, 화상강의실 구축 △ 인문과학관 115호에 새롭게 조성된 화상강의실 양 캠퍼스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및 캠퍼스 간 복수전공 학생들의 원활한 수업을 위한 캠퍼스 간 화상 강의실이 새롭게 구축됐다. 대형 LED 스크린과 위치추적 카메라 등이 설치됐고 전면적인 강의실 리모델링을 통해 수업 환경을 개선했다. ■ 단국스토어 천안캠퍼스점 5월 오픈 예정 △ 단국스토어 조감도, 학생회관 408호에 조성될 예정이다. 단국스토어는 학교 로고와 캐릭터를 이용한 기념품과 학생과 교직원이 개발한 아이디어 상품, 동문과 대학 입주기업이 기획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 10월 죽전캠퍼스 국제관에 설립됐으며 천안캠퍼스에는 오는 5월 오픈 예정이다. 백동헌 천안부총장은 “학생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학업과 창의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캠퍼스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각자의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응원한다”고 전했다. #단국대 #교육환경 #환경개선 #리모델링 #공간 #휴게시설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윤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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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엄원식 교수, ‘먹장어 점액서 영감’ 모발보다 100배 얇고 질긴 3D프린팅 섬유 개발

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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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식 교수(고분자시스템공학부)가 먹장어(일명 곰장어) 점액의 섬유질 구조를 모사해 머리카락보다 100배 얇고 질긴 초미세 섬유를 고속 3D프린팅 기술로 개발했다. ▲ 엄원식 교수(고분자시스템공학부) 기존 3D프린팅 기술로는 동물의 털보다 얇은 16마이크론(µm) 이하의 섬유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섬유가 16마이크론(µm) 이하로 얇아지면 표면 장력으로 쉽게 끊어지고, 제작 속도가 느려지는 한계가 존재했다. 연구팀은 먹장어 점액의 섬유질 구조에 영감을 받아 미국 일리노이·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공동으로 1.5µm(머리카락 굵기의 약 1/100배) 직경의 초미세 섬유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먹장어는 외부의 위협을 받으면 엄청난 양의 끈끈한 점액을 뿜어낸다. 점액은 단순한 젤이 아니라 섬유질 실타래로 가득차 강하고 질긴 섬유질로 변해 먹장어를 보호한다. 연구팀은 먹장어 점액의 초미세 섬유질 실타래 구조를 모사하기 위해 기존 3D프린팅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초미세 섬유의 프린팅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 하이드로젤 내부에 3D 프린팅된 먹장어 모사 섬유 구조체 연구팀은 기존 3D프린팅의 적층제조 기술이 아니라 섬유공학에서 활용되는 습식방사 원리인 ‘용매교환(solvent exchange)’을 도입해 하이드로젤 내부에서 프린팅된 잉크가 즉시 굳도록 설계했다. 이 기술은 1.5마이크론(µm) 직경의 초미세 섬유를 빠르게 프린팅하고, 여러 개의 노즐을 병렬로 인쇄해 50만 배 이상 빨라졌다. 5MPa(메가파스칼)의 부드러운 고무부터 3,500MPa(메가파스칼)의 플라스틱까지 다양한 탄성 계수를 가진 열가소성 고분자 재료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상위 6% 저널, IF 14.7)에 지난 1월 게재됐다. 논문명은 "Fast 3D printing of fine, continuous, and soft fibers via embedded solvent exchange(용매 교환을 통한 미세하고 연속적인 연질 섬유의 빠른 3D 프린팅)"이다. 엄원식 교수는 “기존 3D 프린팅 기술의 한계를 넘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방식으로 초미세 섬유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됐다”라며 “향후 의료용 최소 침습 약물 전달 장치, 로봇 촉각 센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단국대학교,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홍익대학교가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단국대 #엄원식교수 #고분자시스템공학부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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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대학 체육의 산증인' 장충식 명예이사장, 단국스포츠 70년사 출간기념 인터뷰 [월간조선]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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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월간지 《月刊朝鮮(월간조선)》은 2025년 3월호에 스포츠인 장충식 명예이사장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월간조선은 88서울올림픽 유치에 기여하고 스포츠를 통해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며, 남북 스포츠 화합에 기여하는 등 스포츠를 통한 인류애를 실천한 장충식 명예이사장을 조명했다. 또한 사립대학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스포츠 사업을 수행하며 대한민국 대학 스포츠 발전에 기틀을 마련해 온 장충식 명예이사장의 활약상에 주목했다. 인터뷰는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평생을 교육자이자 스포츠인으로 살아오며 국내 고등교육 발전과 스포츠를 향한 헌신과 집념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국내 대학 최초로 70년의 대학 스포츠 교사(校史)를 책으로 엮은 「도전과 영광의 길, 단국스포츠 70년사」를 통해 우리나라 스포츠진흥 정책 변화 속에서 단국인의 불굴의 투지와 끈기로 이룬 성과를 조명했다. 다음은 월간조선 인터뷰 게재 전문 [월간조선 2025년 3월호 390~403면], [글 정혜연 기자 / 사진 단국대 홍보팀 제공] ▲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月刊朝鮮(월간조선)> 정혜연 기자와 단국스포츠 70년사 출간기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남북 단일팀 구성, 동계 스포츠 육성 등 스포츠 비화 담은 「도전과 영광의 길, 단국스포츠 70년사」 펴내 “쇼트트랙은 우리나라에 없던 종목… IOC 위원들 설득해 올림픽 종목 만들어” 일본으로 넘어갈 뻔한 88 서울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하는 데 일조 ◎ 나는 이런 사람이었노라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요. “바보죠.” ◎ 왜요? “선친에게 받은 유산을 모두 단국대학교에 기부했지요. 정치권에서 입각하라,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모두 거절했지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과 권력을 모두 마다했으니 바보 아니겠습니까(웃음)” 아흔넷의 어른은 호방하게 웃었다. 눈이 펑펑 오며 체감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2월 7일에 이 어른은 넥타이에, 정장 조끼, 재킷까지 입은 정갈한 차림으로 기자 일행을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장충식(張忠植) 명예이사장은 한평생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이자, 대학 체육을 육성한 체육계의 산증인이다. 그는 1967년 단국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면서 서른여섯의 나이에 총장에 취임해 대학배드민턴협회 회장을 시작으로 대학스키연맹, 대학축구연맹, 대학태권도연맹 회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대학 스포츠 발전을 이끌었다. ▲ 1989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체육회담에서 남측 장충식 대표(오른쪽)와 북측 김형진 대표가 악수를 나누는 모습. 대한민국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이바지했고, 1991년에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단장으로서 남북 단일팀을 이끌었다. 광복 이후 최초로 조직된 청소년 남북 축구 단일팀은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남북 관중이 하나가 되어 단일팀 단가인 ‘아리랑’을 합창하는 모습은 여전히 많은 이의 기억에 있다. 장 명예이사장은 최근 《도전과 영광의 길, 단국스포츠 70년사》를 펴냈다. 이 책은 단순히 단국대만의 얘기를 담는 것을 넘어 1989~1990년에 있었던 남북체육회담의 비사(秘史)까지 담고 있다. ▲ 우리 대학은 1959년에 럭비부를 창단했다. “제가요, 어려서부터 육상을 하고 투포환을 했어요. 경성사범대(서울대 전신)에 입학했는데 선배들이 제가 원체 체격이 크니까 ‘무슨 운동을 했느냐’고 묻더니 럭비부에 들어오래요. 럭비부가 있는 곳이 경희대, 동국대, 그리고 경성사범대뿐이었거든요. 경성사범대 럭비부는 B 학점 이상을 받은 학생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저는 럭비가 원초적이라서 좋았어요. 협동과 용기를 길러주는 스포츠이기도 하고요. 나중에 제가 단국대에 와서 럭비부를 만들었어요. 스키는 어려서부터 탔는데 나이 들어서도 꽤 오래 탔지요. 제가 스키를 배우던 60년대는 스키장이나 별다른 시설이 없어서 스키를 짊어지고 산을 올라가야 했어요. 그 당시 스키는 레저 스포츠가 아닌, 강원도 산자락에 살던 마을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 같은 거였어요” ◎ 럭비에 스키에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운동을 원체 좋아했어요. 운동하는 친구들은 단순하고 순수하거든요.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라서 세상은 암울했지요. 럭비를 하면서 학우들과 몸을 부딪치며 뒹굴다 보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어요. 대학 총장이 된 이후에는 우리 대학 학생들부터 강하게 길러야겠다고 다짐하고 본격적으로 다양한 종목의 운동부를 만들었습니다. 단국대에 스키부를 만들고 싶었는데 스키가 있어야 말이지요. 일본의 재일동포들에게 애걸하고 사비(私費)를 털어 스키 60대를 갖고 들어와서 체육과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들이 경쟁을 통해 한국 스키를 발전시킨 겁니다” ◎ 단국대에 럭비부, 농구부, 레슬링부가 창단된 것이 1950년대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되나요? 태권도부, 스키부, 조정부, 수영부도 만들었지요” ◎ 단국대가 배출한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대표적으로 박태환 선수가 있습니다. “박태환 선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눈여겨 봤어요. 우리 대학에서 영입해 졸업할 때까지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저는 유명한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고 선수 선발은 감독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는 편이었습니다. 금전적 스카우트 경쟁보다 선수 잠재력을 키우는 데 노력해 달라는 당부는 했어요. 박태환 선수도 다른 대학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부모가 우리 대학이 아들의 미래를 이끌어줄 의지가 강해서 선택했다고 들었습니다.” ◎ 지금이야 수영이 인기 종목이지만 그때만 해도 비인기 종목이었는데요. “제가요. 대학의 스포츠부를 육성할 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당시에 스포츠가 몇몇 구기 종목만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동계 스포츠나 비인기 종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스포츠는 교육의 일환이니까 순위 중심으로 과열 경쟁하거나 돈을 앞세운 선수 스카우트 경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서른여섯에 대학 총장이 됐는데 정치 권력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나이보다 훨씬 정정하신데 이런 이유가 한 몫을 했을까요. “제가요, 사실 여러 곳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국회의원에 출마해라, 장관이나 총리로 입각하라고요. 박정희 정부부터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한 번도 수락하지 않았어요. 스포츠를 통해서 국위(國位)를 선양할 것 같은 자리가 있으면 언제든 제 모든 노력을 기울이려고 했어요” 인터뷰 내내 존댓말 하는 아흔넷의 어른 이 어른,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손녀뻘인 기자에게 존댓말을 썼다. ‘제가요’ ‘저는요’라고 말하며 자신을 끝끝내 낮췄다. 장 명예이사장은 자신이 학생 때부터 손님이 오면 누구든 집무실 밖까지 마중을 나와서 손을 잡고 들어갔다고 했다. 몇 해 전의 낙상 사고로 고관절이 부러져 거동이 불편해 더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건강해 보였고, 몇몇 체육사에 대해서 아주 또렷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온 다음 날부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빛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서 소개하자면, 단국대는 ‘동계 스포츠에 진심’이었던 학교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선진국에서는 동계 스포츠에 대한 애호도가 높았는데 유독 한국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동계 스포츠 육성에 매진했다. 단국대 스키부는 1968년에 창단했고, 1976년에는 빙상부를 창단했다. 빙상부는 2000년 이후 동계 아시안게임, 동계 올림픽의 메달을 휩쓸며 ‘단국대 빙상부는 곧 국가대표의 산실(産室)’이라고 인정을 받았다. 장 명예이사장은 대한민국 특성에 맞는 쇼트트랙 선수를 길러보고자 단국대에 쇼트트랙팀을 구성했다. 초창기의 빙상팀이 다져놓은 기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국대 빙상팀 발전의 초석이 됐다. “쇼트트랙은 우리나라에 없던 종목인데, 가만히 보니 배기태, 김기훈 같은 우리 선수들이 서양 사람들보다 체격도 작고 근력에 한계가 있어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론 따라가기 어렵겠더라고요. 감독한테 ‘쇼트트랙으로 바꿔서 훈련해 달라’고 해서 시작됐어요. 국제대회에 나가보니까 경쟁력이 있더라고요. 이걸 올림픽 종목에 넣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IOC 위원들을 설득해서 된 거예요.” ▲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기술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1988년에 천안캠퍼스에서 학술 대회를 열었다. 親北(친북)인 아랍 왕자의 마음 돌려 88서울올림픽 유치 그의 이력이야 수두룩하지만,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에 일익을 담당한 것은 혁혁한 공으로 꼽힌다. 일본을 상대로 올림픽 유치 캠페인에 뛰어든 1981년 초반에 한국은 매우 불리했다. 한국은 후발국으로 스포츠 외교 면에서 일본보다 매우 뒤졌다. 중동 지역의 국가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일본 나고야에 많은 관심을 가진 반면, 서울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다. 특히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셰이크 파하드 위원장은 쿠웨이트 국왕의 막냇동생으로 친북(親北) 인사여서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회장과 뜻을 모아 단국대에 파하드 왕자를 초청해 명예박사 학위를 주고 한국 답사를 통해 한국 스포츠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태권도가 미치는 선한 영향력을 홍보했다. 파하드 왕자는 여러 아랍 국가의 IOC 위원들을 설득해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뽑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장 명예이사장은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훈장(1989년), 청룡장(1990년)을 받았고 1996년에는 IOC로부터 올림픽 훈장을 받았다. ◎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은 역사에 어떤 의미일까요. “86아시안게임은 88서울올림픽을 위한 예행연습 같은 느낌이 있었지요. 88서울올림픽의 동력은 세계적 노출이었어요. 한국이 개국 이래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던 때입니다. 그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세계 기준에 맞고,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였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시험이라고 한다면, 이를 위해 온 국민이 희망과 열정을 쏟았고 다행히 그 결과가 합격선에 도달했어요. 그랬기에 여러 가지 변화를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88서울올림픽 이전의 한국이 ‘산업화 시대의 근대화’라면 그 이후는 ‘세계화 시대의 근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올림픽 이전에 열렸던 모스크바올림픽, LA올림픽이 냉전 갈등으로 인해 동서구권이 보복성 불참을 선언해 반쪽짜리였다면 서울올림픽은 역사상 최대 나라가 참가한 온전한 올림픽으로 치러졌다는 점이 획기적이라고 봅니다. 이후에 동서구에서 해빙 무드가 일고 한국의 북방 정책도 현실화되면서 평화 무드가 구축됐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냉전체제의 해제라는 세계사적 급변의 새싹을 찾는다면 88서울올림픽의 동서구권 동시 참가가 아닐까 생각이 돼요.” 1963년부터 남북 단일팀 시도 남한과 북한이 스포츠 단일팀을 꾸리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63년에 IOC의 중재로 최초의 남북체육회담이 개최됐고, 올림픽 단일팀 구성 등을 놓고 세 차례나 회담을 가졌지만, 성과가 없었다. 1984년에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장이 LA올림픽 및 국제경기 단일팀 파견 회담을 제의했으나 역시 성과가 없었다. 그해 북한올림픽위원회는 LA올림픽에 불참했다. 1988년에는 북한의 정준기 총리가 ‘88서울올림픽’ 공동 주최를 주장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IOC의 중재로 남측 김종하, 북측 김유순을 대표로 하는 로잔회담이 열렸는데 성과 없이 종료됐다.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불참했다. 1989년에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장이 베이징아시안게임에 파견할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을 제의했고, 정부는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에 장충식 명예이사장을 임명했다. 이 회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비록 불발로 끝났지만, 이 과정을 자세히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때의 토의 내용이 결과적으로 1년 뒤의 남북 단일팀 성사에 기초가 됐기 때문이다. 또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작은 의견 하나조차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생히 볼 수 있다. 1989년에 수석대표였던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처음부터 회담을 갈등의 전장이 아니라 화합의 마당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쓴 《시대를 넘어 미래를 열다》의 일부분이다. 〈1984년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줬다. 회견을 하다가 의견 대립이 생기면 차분히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성을 지르다가 이윽고 욕설이 나오고 결국은 성냥통이나 재떨이를 던지고, 깨트리는 살벌한 장면도 있었다. (중략) 남북한이 휴전 중이니 회담장에서라도 상대방에 밀리면 전쟁에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략) 내가 교육자인데 국가를 대표하는 회담에서 인신공격과 욕설, 기물 파손을 한다면 어떻게 학생들을 볼 수 있겠는가.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이 광경을 보면 조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남북 간의 회담을 진행하는 자세도 문제지만, 회담 현장에 있는 대표진을 뒤에서 조종하는 정부의 개입도 문제였다. “성공적 회담의 기본 방식은 이성적 대화이고, 이를 뒷받침할 전제조건을 현장 중심의 자율성 존중이라고 봤습니다. 김집 당시 체육부 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며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수석대표를 맡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내 주장을 수용했어요. 대표단의 재량권을 인정받은 거죠” ‘아마추어 수석대표가 북한에 놀아나고 있다’ 대망의 1차 회담이 1989년 3월 9일 판문점 우리 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회담 의제는 선수단 호칭, 단기, 단가, 선수단 구성, 선수단 복장, 선수 선발, 선수 훈련, 신변 안전 보장, 선수단 경비, 단일팀 공동위원회 구성 등 10개였는데, 1차 회담은 우호적으로 진행돼 선발 원칙에 합의했고 단가는 1920년대의 ‘아리랑’으로 하기로 했다. 2차 회담(1989년 3월 28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도 진전이 있었고, 3차 회담이 기대됐다. 그러나 문익환 목사가 당국의 허가 없이 방북을 하고, 이로 인해 사법적 처리를 받게 됐는데 북한 측이 이를 비난하며 3차 회담을 거부했다. 7개월이 지난 1989년 10월 20일에야 평화의 집에서 회담이 다시 열렸다. 베이징아시안게임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북한 측이 계속 제기해 온 단일팀 단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제안을 한 북한 측이 놀라고 당황할 만큼 파격적인 수용이었다. “오히려 우리 측에서 시끄러웠습니다. 제가 북한의 의견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는 비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추어 수석대표가 북한에 놀아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제 신념은 확고했어요. 회담을 하는 이유는 선전, 선동이 아니라 관계 개선을 위한 것입니다. 한 걸음씩 서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거면 회담할 이유가 있나요.” ◎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회담 중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회담장 뒤에서 쪽지가 들어왔어요. 쪽지가 들어오면 점잖았던 북측 대표가 갑자기 정치 공세를 늘어놓거나 장광설을 펼치며 회담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곤 했어요. 북측에 회담 전술을 짜고 지시하는 전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쪽 대표들에게는 절대 흥분하지 말고 역사상 최초의 단일팀을 만들어낸다는 목표에만 충실하자고 몇 번이고 당부했습니다” ▲ 1989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3차 남북체육회담. 장충식(오른쪽) 대표와 북측 김형진(왼쪽) 대표가 한반도기를 합의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후에 회담이 점점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은 베이징아시안게임 조직위로 보내는 합의서에 부정적이었어요. 단일팀으로 출전한다는 합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단일팀으로 출전한다고 보장을 하라는 겁니다. ‘합의’와 ‘보장’은 큰 차이가 있어요. 북한 측의 주장은 ‘단일팀 구성이 안 되면 우리가 베이징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인데, 정부의 정치·외교적 전략은 차치하고 젊은 선수들이 가꿔온 아시안게임 참가의 꿈은 어쩌란 말입니까. 매우 복잡하고 위험한 얘기였어요” ◎ 결과론적 얘기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회담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베이징아시안게임에 단일팀으로 출전하지는 못했지만요. “남북 단일팀의 호칭, 단기, 단가, 공동단장제, 선수단 구성 및 실무 사무국 설치 등의 구체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자부할 만한 일이지요. 회담을 통해 얼개는 완성했는데 최종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겁니다. 남북 모두 상호 불신의 벽이 높았고, 각자 체육계나 정치계에 얽힌 속셈을 완전히 씻어내기 어려웠어요. 절반의 성공이었지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 언젠가 단일팀을 꾸리겠다는 열망은 더 커졌어요.” 결실을 거둔 주인공 역시 장충식 명예이사장이었다. ▲ 1996년, 김운용 당시 IOC위원이 장충식 명예이사장에게 올림픽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 단일팀 대신 친선 축구경기로 전략 바꿔서 북한 공략 체육회담이 무산되고 체육부 장관에 임명된 정동성 당시 민정당 의원이 1990년의 어느 날, 장충식 명예이사장을 찾아왔다.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였는데 세 가지 주문이 있었다. 첫째, 베이징아시안게임의 선수단장을 맡아줄 것, 둘째 우리가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중국과 우호 관계를 구축해 달라, 셋째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남북한이 국제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하도록 비밀리에 성사시키라는 것이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책 《학연가연》에서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기술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지만 좌절한 남북체육협상의 불씨를 되살리고 싶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 정책이 결국 남북 간의 화해로 이어져야 그 값어치가 살고, 우리 민족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다섯 번째 선수단장직을 수락하기로 했다.〉 방법을 달리했다. 단일팀이 아니라 ‘경평전’이라는 축구대회를 부활시켜 보자고 했다. 경평전은 1929~1946년까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렸던 축구대회의 애칭이다. 분단 이전에 남북 지역의 대표 선수들을 구성해 애향심을 고취하던 친선 축구경기였다. 북한이 남한의 스포츠 교류를 ‘유화 제스처를 통한 평화 공세가 아닌가’ 하는 불신의 눈초리로 봤기에 비공개 회담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일팀 구성에 대해 많은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기에 회담을 개시한 지 불과 4일 만에 합의서 작성을 완료했다. 1990년 10월, 장충식 명예이사장과 김형진 북측 선수단장은 베이징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통일 축구 성사 사실을 공개했다. 같은 달에 바로 남과 북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남북통일 축구 경기를 했고, 1990년 10월 12일, 세계탁구선수권대회(1991년 개최)와 여러 국제대회의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을 하자는 남북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러고 1990년 11월 29일부터 또다시 실무 접촉 회의가 이어졌다. 4차 회담을 앞둔 어느 날,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쓴 《시대를 넘어 미래를 열다》의 한 부분이다.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당일 합의를 완결하도록 압박을 해야겠다고 구상했다. 우리 쪽 강경파가 ‘장 수석이 또 북한에 졌다’는 비판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았다. 통일축구대회에서도 드러났듯이 스포츠가 가진 힘은 컸다. 교류는 결국 사람이 만나는 일이니 이처럼 대규모 교류가 이뤄지면 북한의 경직성도 서서히 유연화될 것이다. 이런 때 북한의 문을 열지 못하면 다음 기회에도 어렵다고 믿었다.〉 1991년 2월 12일 마침내 ‘남북 스포츠 단일팀 구성 합의문’이 나왔다. 선수단 호칭은 우리말로 코리아(KOREA), 선수단 단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 선수단 단가는 1920년대 남북이 함께 부르던 ‘아리랑’, 선수단장에 있어서 탁구단장은 북측, 축구단장은 남측이 맡기로 했다. “출전한 북측 선수들, 방에서 TV도 못 보게 관리” ◎ 명예이사장님께 1989~1990년은 아주 특별하겠네요.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시기였어요. 선친은 남한과 북한이 언제고 평화통일을 해야 비로소 한민족이 부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선친의 유훈이 있어서 저는 진심으로 단일팀 회담에 참여했고 성사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을 했어요. 몇 번의 실패 후에 1989년 단일팀 구성에 대한 합의, 1990년 세계청소년축구 단일팀 출전 합의를 이뤄냈을 때의 감동은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시의 국제 정세도 우리에게 순풍으로 작용했고 여건도 좋았어요. 청소년 대표 단일팀을 이끌고 포르투갈에서 겪은 일은 잊히지 않아요” ◎ 어떤 기억인지 말씀해 주시죠. “코치진과 임원들이 노동당의 모든 지시를 지키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엄격한 감시를 하며 사소한 개인행동도 못 하게 하더군요. 남한, 북한 아이들을 모두 호텔방에 나란히 뒀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방에서 TV를 보는데 북한 아이들은 그걸 못 보게 해요. 제가 북한 감독한테 ‘아이들한테까지 이럴 필요가 있느냐’고 설득해서 TV를 보게 해줬어요. 또 북측 단장이 나중에 북한에 들어갈 때 여기저기 선물을 할 곳이 많다면서 부탁을 하기에 와인 100병을 사비로 사서 줬어요” ◎ 단일팀으로 경기하러 왔는데 그 정도로 통제를 하다니요. “포르투갈로 갈 때는 한국 비행기, 돌아올 때는 북한 비행기를 타고 왔지요. 세부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신기한 것이 계속 몸 부딪치면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남북이라는 관념이 없어지고 친근함이 들어요. 남북한 문제는 한민족이라는 정서적 힘만으로 풀 수는 없을 겁니다. 예전보다 상황은 더 복잡해졌고 순진한 통일론만 앞세울 수는 없어요. 그래도 남북한이 다시 해빙 무드를 만든다면 그 채널은 스포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1991년,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치러진 2차 평가전을 위해 한반도기와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1932년 중국 톈진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범정(梵亭) 장형(張炯·1889~1964년) 선생은 지혜와 담력을 두루 갖춘 청년 독립운동가로 혜당(惠堂) 조희재(趙喜在·1882~1947년) 여사와 단국대를 공동 설립했다. 범정은 일찍이 단국대의 창학 정신을 구국, 자주, 자립으로 정했는데, 세 가지 모두 강한 신체와 체력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부친 범정 선생의 부탁으로 부인인 양인식 여사는 만삭의 몸으로 중국 관내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에게 군자금을 전달해 주기 위해 중국에 들어갔다가, 장충식 명예이사장을 낳았다. 집안 어른들은 그가 일본 경찰에 노출되지 않을까 우려해 성씨를 바꾸고 중국인 학교에 보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광복을 맞아 월남했다. 그는 경성제대 역사학과에 진학했는데, 나중에 범정 선생이 학적을 단국대학 정법학부 정치학과로 바꾸는 바람에 단국대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던 1964년에 부친의 부름으로 귀국했다가 단국대의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대학의 설립자이자 부친인 범정 선생이 늘 말해온 ‘단국대학 학생들은 모름지기 공부보다는 의식, 의식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체육 진흥 사업을 시작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선수 육성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체육 행사를 넓히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스포츠랑 상관없는 얘기인데 해도 되려나요? 제가요, 총장으로 재직 중에 중앙정보부, 보안사에서 두 번 고문을 당했어요.” ◎ 대학 총장을 고문할 일이 뭐가 있다고요. “정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 다녀온 애들을 제적(除籍)을 시켜야지, 왜 복교를 시키느냐며 그랬어요. 물고문도 당하고 했는데, 그래도 절대 학생들을 퇴학시키지는 않았어요.” ◎ 단 한 명도요? “네, 단 한 명도요. 학생들이 결국 직업을 가져야 하잖아요. 나라에서 전부 교도소에 보내 죄수로 만들었는데 우리 대학에서마저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전국에서 학생 데모를 한 학생들을 한 명도 퇴학을 시키지 않은 학교는 단국대뿐이에요. 나중에 주례도 서주고, 유학 갈 때 신원 보증도 해주고 그랬어요. 정치권을 너무 쳐다보지 않아서 곤욕을 겪은 적도 있고요” 전국 대학 최초로 지방 캠퍼스 만들어 ◎ 어떤 일이 있으셨는데요. “제가 정치를 싫어하는 게 남을 괴롭혀서예요. 정치를 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꼭 남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게 되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김영삼 정부 때 탄압을 많이 받았어요. 김영삼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정치자금을 요구했는데 거절했거든요. 그런데 제 생각은 분명했어요. 학교 아이들이 낸 등록금을 어떻게 정치자금으로 주나요.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민관식 고문이 ‘이 사람아, 어쩌다 김영삼 대통령한테 미운털이 박혔나. 단국대학이 위험해’라고 하더군요. 그때 가택 수색당하고,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병원을 짓기로 했는데 은행권의 대출을 막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어요” ◎ 단국대 천안캠퍼스 병원이 생기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군요. “천안이요, 1970년대에 고등학교는 많은데 대학이 없어서 학생들이 서울과 대전으로 유학 가는 형편이었어요. 거기에 대학을 세우면 교육도시가 될 것 같아서 전국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지방 캠퍼스를 만들었어요. 얼굴도 모르는 천안시장 찾아가서 설득해서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천안에 종합병원 수준의 보건시설이 또 없어요. 그래서 치대를 만들었는데 성공했고 의과대학이랑 부속 병원을 만들기로 했어요. (단국대는 1988년 의예과를 만들었고 1990년 보건사회부로부터 종합병원 건립을 승인받았다.) 천안 인근에서 제일가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김영삼 정권 때라 은행 대출이 하나도 안 되니 어떡해요. 극동건설 사장 하던 양반이 ‘막내아들이 단국대를 졸업해서 내가 학부형인데, 외상으로 공사를 먼저 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만든 거예요. 매우 고맙지요. 그 양반이 아니었으면 지금 저 병원이 있겠어요? 요즘도 입원실이 늘 만실이라고 해요. 그때마다 마음이 좋아요” ◎ 명예이사장님께 스포츠는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요. 스포츠에 매진해서 제 삶을 좀 더 품위 있게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포츠는 아무리 하찮은 기록이더라도 그 순간을 함께한 선수와 지도자, 관중의 승리에 대한 희망이 배어 있어요. 땀과 눈물, 도전과 영광은 단순히 이기고 지고, 몇 등이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스포츠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생존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시대가 달라지면서 양식은 바뀌겠지만 영원히 발전해 나갈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데,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굳이 비서들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를 하느라 힘이 많이 들었을 터인데, 오히려 “고생했다”며 기자를 잡는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1932년 중국 텐진 출생 / 서울대 역사과, 단국대 정치과, 미국 브리검영대 대학원 졸업, 미국 오하이오대 명예법학박사, 프랑스 몽펠리에대 명예박사, 러시아 레닌그라드공대 명예박사 /단국대 총장, 대학배드민턴연맹회장, 대학스키연맹회장, 대학축구연맹회장, 대학태권도연맹회장, 대학교육협의회장,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 베이징아시안게임 단장,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단장,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 단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역임. /現 단국대 명예이사장, 범은장학재단 이사장 / 국민훈장 모란장, IOC훈장, 체육훈장 청룡장, 올림픽훈장, 대한체육회 체육상 특별공로상 등 수훈 ▶ 월간조선 바로가기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503100044 #단국대 #장충식명예이사장 #단국스포츠70년사 #월간조선 #인터뷰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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