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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로 단국 사랑 전할게요, 청년봉사단 발대식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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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캠퍼스 청년봉사단이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천안캠퍼스 학생회관에서 ‘2019학년도 단국대학교 청년봉사단 발대식“이 진행됐다. 발대식에는 남보우 천안부총장, 김기홍 사회봉사단장(학생처장)을 비롯한 대학 관계자와 봉사단 50여 명이 참석했다. 우리 대학의 교시 '진리ㆍ봉사' 구현을 통해 나눔의 행복을 배우고 도덕적 지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자 사회봉사단이 모집한 청년봉사단은 매년 새로운 봉사단원으로 구성해 다양한 봉사를 펼치고 있다. 천안 수해농가 복구, 포항 한동대 지진 피해 복구, 김장 봉사활동 등을 진행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힘써 왔다. ▲청년봉사단 발대식 기념사진 올해에는 174명의 학생들이 청년봉사단에 지원해 봉사에 대한 단국인의 열의를 선보였다. 봉사단은 단국대학교를 대표해 봉사활동에 임하는 만큼 안전하고 건강하게, 헌신적으로 임하겠다고 선서한 후 남보우 부총장에게 출정선서문을 전달했다. 남보우 부총장은 "단국인으로서 진리 탐구를 통해 지성을 배양하고, 봉사를 통해 인격을 도야하는 우리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봉사를 통해 소중한 경험을 쌓고 성장해나가길 기대한다"고 봉사단을 격려했다. 한편, 발대식 2부 순서로 우리 대학에 재학 중인 박설희 양(국제스포츠학과 1년)의 리듬체조 공연과 오순이 교수(동양화전공)의 특강이 진행됐다. 오 교수는 사고로 얻게 된 장애를 딛고 구족화가가 되어 강단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며, 우리 학생들이 이웃을 돕고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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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White Coat Ceremony 진행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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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5시 의대 강당에서 ‘White Coat Ceremony’가 진행됐다. ‘White Coat Ceremony’는 의과대학 본과 3학년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임상 실습에 나가기 전 의료윤리를 되새기고 사명감을 다지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행사에는 실습을 앞둔 재학생 40명과 김재일 의과대학장, 조종태 단국대병원장, 학부모 등 1백여 명이 참석했다. ▲ ‘White Coat Ceremony’ 기념촬영 이날 행사에서는 학부모가 자녀들에게 의사 가운을 직접 입혀주고 청진기를 수여하는 착복식과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진행됐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로서의 윤리를 지키고,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서약하는 선서로, 정주현 양을 대표로 재학생이 함께 선서를 한 후 선서문을 김재일 의과대학장에게 전달했다. 착복식을 마친 학생들은 단국대병원을 비롯한 실습현장에서 1년간 1,432시간의 실습을 진행하게 된다. 김재일 학장은 “실습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생명을 다룬다는 데 대한 사명을 갖고 환자를 따뜻하게 대하는 데 힘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종태 단국대병원장도 새로운 발걸음을 딛는 학생들을 격려하며 “진료와 교육의 중심인 단국대병원에서 그동안 배운 책 속의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 맞춤형 의술을 습득해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알 하사니(Mohammed Alhasani) 군이 착복식을 마친 후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편, 이번 행사에 참석한 학생 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유학생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 바로 알 하사니(Mohammed Alhasani) 군과 카릿 알어테비(Alotaibi Khalid) 군. 우리 대학이 사우디아라비아 고등교육부와 의과대학 장학생 유치를 위해 협의한 장학프로그램에 따라 입학한 두 학생은 한국어과정을 마치고 의과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오고 있다. 알 하사니 군은 “한국의 의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단국대 의대에 진학하게 됐다. 처음에는 언어와 낯선 음식 문화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제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한국어 실력도 많이 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 국시에 합격하는 게 목표고, 한국에서 전공의 과정까지 최선을 다해 수학한 후 고국의 의학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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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3명 부동산‧건설대학원 나란히 입학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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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3각, 배움의 길 함께 걸어요'…부동산‧건설대학원 부동산경영학과 동시 입학 부부와 남동생 등 가족 세 명이 우리 대학 부동산‧건설대학원에 함께 입학해 화제. 주인공은 부동산‧건설대학원 19학번 김왕수(48세, 용인 삼성이앤씨 대표), 김미라(45세, 김씨 부인), 김인수 씨(45세, 김씨 남동생). ▲ 김왕수 씨(오른쪽)와 부인 김미라 씨(가운데), 남동생 김인수 씨(왼쪽) 사진 고교 졸업 후 경기도 용인에서 30년 가까이 토목설계 일을 해온 김 씨(김왕수) 가족은 향학열을 불태워 2015년 한경대 생태주거디자인과에 함께 입학한 후 올해 2월말 동시에 졸업했고 학업을 잇기 위해 단국대 부동산‧건설대학원 부동산경영학과에 나란히 입학했다. 김 씨는 2014년 용인 상하동 전원주택단지 분양을 통해 사업을 키워왔다며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현장에서 필요한 건축분야 지식이 더욱 요구되어 부인과 남동생까지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라고 입학 배경을 설명했다. 김 씨에 따르면 2014년 분양한 전원주택단지는 토지/건축면적,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입주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분양시장에서 큰 호응이 있었다고 했다. 네 딸을 두고 있어 다복한 딸부자 김 씨는 수업뿐만 아니라 대학원 원우회 행사도 빠짐없이 챙긴다며 “딸들이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를 각각 다니고 있어 공부하는 아버지로써 늘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부인과 남동생이 대학원을 같이 다녀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용인시토목설계협회 2대 회장에 오른 김씨는 “사업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늦깎이 대학원생으로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고 현재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숨은 조력자인 아내와 남동생의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입학과 동시에 원우회 기수 회장을 떠맡은 김 씨는 현재 용인서부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 위원, 구성로터리클럽 회원, 용인시 상하동 체육회장 등을 맡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봉사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김 씨는 “이왕 시작한 공부, 늦더라도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단국대 부동산‧건설대학원은 김 씨 가족에게 장학규정을 적용, 등록금의 15%를 감면해주었다.

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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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은장학재단, 장학금 4,650만원 전달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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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은장학재단(이사장 장충식)이 지난 4일 2019학년도 1학기 범은장학증서 수여식을 갖고 장학금 4,650만원을 전달했다. 장학금은 창학정신을 구현한 모범학생을 단과대학별로 추천받아 최종적으로 죽전 16명, 천안 15명 모두 31명을 선발해 150만원씩 전달되었다. ▲ 죽전캠퍼스 범은장학금 수여식 기념사진 ▲ 천안캠퍼스 범은장학금 수여식 기념사진 장학생으로 선발된 지소영 양(과학교육과 2년)은 “설립자의 정신이 깃든 뜻깊은 장학금을 받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교단에 서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공부하는 후배 학생들을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수여식에서는 천안캠퍼스 ‘강제보선생 장학금’도 수여돼 윤혜준 양(생활체육학과 2학년, 전액장학금), 이다연 양(치의학과 1학년, 150만원)이 각각 장학금을 받았다. 범은장학재단(梵恩獎學財團)은 우리 대학 장충식 이사장이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과 혜당 조희재 여사의 창학정신을 기리고자 1990년에 설립한 육영재단이다. 동 재단은 장학사업 외에 우수교수 연구장려금 지급, 해외유학비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동 재단은 2018년도 한국가이드스타가 국내 8,993개 공익법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운영평가에서 최고등급을 인정받으며 재무건전성과 내실을 인정받기도 했다.

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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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영 교수, 발전기금 1,300만원 기탁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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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영 교수(교육대학원 교육학과)가 4월 1일 대외협력팀을 방문, 재학생 장학생에 써달라며 발전기금 1,300만원을 약정했다. 허재영 교수는 최근 전개되고 있는 소액기부 캠페인 「대단한 기부」 모금 소식을 접하고 대학발전을 위해 기부행렬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기부의사를 밝혔다. ▲ 허재영 교수 부설 일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허재영 교수는 현재 한국연구재단이 발주한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주제 : 지식 권력의 변천과 동아시아 인문학-한·중·일 지식체계와 유통의 컨디버전스)」 연구책임자도 맡고 있다. 7년간 연구가 진행될 이번 사업은 국고지원비를 포함 100억원이 넘게 투입되는 대형 연구과제이다. 허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15세기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 중국의 지식 전통과 교류 상황을 체계화하고 이로부터 지식의 영향력과 가치를 규명할 계획이다. 일본연구소는 사업과 관련하여 연구논문 발행과 아울러 연구회, 학술대회, 강연, 학문후속세대 특강, 해외대학 도서관 탐방, 지역인문학센터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문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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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기금

MT 문화 바꿔봐요! 보건행정학과 역사탐방 MT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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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9일 보건행정학과 학생 60여 명이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배우며 의미있는 학과 MT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보건행정학과 학생들은 독립기념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상설전시관을 돌아본 후 우리 대학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의 어록비를 탐방하기도 했다. 특히 장형 선생의 어록비가 독립기념관 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장형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애교심을 고취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보건행정학과 학생들이 독립기념관 내 장형 선생 어록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역사탐방 MT를 기획한 보건행정학과 학회장 이수빈 양(17학번)은 “의미있는 MT를 진행하고자 역사탐방을 기획했다”며 “일제 치하 선교사나 기업과 독지가가 설립한 대학은 많지만, 우리 대학은 독립운동가가 설립하고 그 뿌리와 사상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과 애교심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재현 교수는 “건전하고 의미있는 MT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제자들이 대견스럽고 역사탐방을 계기로 애교심 고취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꾸준히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고 전했다. 한편, 외국어대학, 자연과학대학도 그동안 외부에서 진행하던 연합MT를 교내에서 진행하며 신입생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생이 학교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배의 축하공연을 진행하며 단과대학만의 개성있는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 건전한 오리엔테이션 문화를 선도해나간다는 호응을 얻었다.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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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정 동문, 평창올림픽기념 패션공모전 대상 수상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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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후 남북한이 한반도에서 국제대회를 공동개최했을 때 지구촌 사람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복장은? 민다정 동문이 스포츠의 역동성과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한껏 담은 작품으로 패션공모전 대상에 올랐다. 심사위원들은 민 동문 작품이 “전통 문양과 색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타 지원자들보다 한국적 요소를 많이 포함했다”고 심사평을 남겼다. ▲ 대상을 수상한 민다정 동문이 모델과 기념촬영 했다. 패션산업디자인과 14학번인 민 동문은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1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기념 패션디자인 공모전’에서 경쾌한 색감과 활동 기능성을 중점을 둔 작품을 선보여 결선진출자 35명을 뒤로하고 영예의 1등에 올랐다. 당시 공모전이 열렸던 서울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는 유명 패션디자이너와 기업 관계자가 참여해 열띤 반응을 보였다. 민 동문의 작품은 가상의 국제대회에서 사용될 태극기 운반요원의 착용 의상이다. 공모전 대상 수상 후 곧바로 졸업한 민 동문은 국내 유명 패션디자인너 이상봉이 운영하는 ㈜이상봉에 입사해 디자이너 수업을 받고 있다.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이디어랩가 후원했다.

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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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개발원, 대한민국 인적자원개발대상 수상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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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기 방해 없이 책에만 집중하는 『Stay in Books』, 가상 회사 운영하는 『비즈니스 시뮬레이션 게임』 등 혁신 교육프로그램 운영 인재개발원(원장 박귀찬)이 25일(월) 한국HRD협회 주관 『2019 대한민국 인적자원개발대상』에서 교육기관대상을 수상했다. 한국HRD협회 엄준하 회장은 “단국대 인재개발원이 수년간 인재육성에 대한 사명감 아래 창의적이고 성과지향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한 결실이 크다”며 대상 선정 사유를 밝혔다. ▲ 박귀찬 인재개발원 원장(가운데)이 수상 후 기념촬영을 했다. 인재개발원은 2013년부터 「단국인재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전공 상관없이 매년 35명의 학생을 선발, 인문고전과 경영‧경제 수업 등 폭넓은 교양지식을 제공해왔다. 특히 호응이 컸던 『인문고전/비고전』, 『리더십』, 『트렌드』 강의 외에 4시간 동안 전자기기의 방해 없이 책에만 몰두할 수 있는 『Stay in Books』 프로그램, CEO부터 실무 직원까지 역할을 분배해 가상 회사를 운영하는 『비즈니스 시뮬레이션 게임』 등은 참여 학생의 다양한 피드백이 있어 스테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까지 수료생 279명을 배출한 「단국인재아카데미」는 △한국은행 통화정책 경시대회 장려상(2017년) △SK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 크리에이티브스쿨 우수활동상(2016) △MBC 시민 비평상(2016) 등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박귀찬 원장은 “융복합 인재를 키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교직원 직급별 리더십‧역량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1995년 시작된 『대한민국 인적자원개발대상』은 국내 인적자원개발 분야 최고 권위 상으로 선도적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한 교육기관, 기업, 전문가 등에게 수여한다.

문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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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숙 의원, '성평등' 주제 동문초청특강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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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세상 위해 '성평등' 눈 떠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국문과, 82학번)이 18일 천안캠퍼스 국제회의장을 찾아 재학생 대상 동문초청특강을 진행했다. 성평등을 주제로 한 이날 특강에서 정 의원은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난관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선 젠더(Gender) 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수반되어야 한다”며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으나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비율이 여전히 높고 여성 고용률과 남성 대비 임금 수준은 여전히 낮다며 개선이 요구된다고 피력했다. ▲ 정춘숙 의원이 보건간호관 국제회의장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정 의원은 특히 대학 재학시절 자신의 가치관이나 삶의 지향점을 설정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며, 지금 펼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이 대학 시절부터 고민하고 생각해 온 것들이 반영된 결과라고 밝혔다. 또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 학습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많은 고민과 사유를 통해 가치관을 정립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며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당부의 말도 남겼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정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해왔고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사회정의시민행동 제10회 공동선 의정활동상, 법률소비자연맹 국회의원 헌정대상, 국회사무처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상, 국정감사 우수의원’ 등을 받았다. 또한 양성평등과 여성인권 보호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성차별 조사위원,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고 대한민국인권상 국민포장(2015년)을 수훈했다.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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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한시준 초빙교수“임정 100돌 참뜻은 군주국에서 민주공화국 세운 거죠”한겨레 인터뷰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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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사 및 임시정부 연구의 권위자인 한시준 초빙교수를 인터뷰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명예교수로 소개되었음) 다음은 게재 전문(한겨레 2019.3.21.일자 인물19면) [글 강성만 선임기자] △ 한시준 초빙교수 “다른 사람들은 안 하려고 하고 난 좀 어리숙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는 데 역사학자로서 그냥 있을 수 없었죠.” 지난달 단국대 사학과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 말이다. 그는 2008년 뜻하지 않게 ‘대정부 투쟁’ 앞자리에 섰다. 무기는 글과 말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맡고 있던 단국대 인문대학장과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도 스스로 내려놓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정부 지원 연구비도 받지 못했단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그가 맞선 것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기념일로 지정하려는 시도였다. 다행히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건국일 제정이 무산된 것은 <한겨레> 등 진보언론 역할이 컸죠. 고맙게 생각해요.” 그를 18일 경기 용인시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는 국내 사학계의 대표적인 임시정부 연구자다. 임정 외무총장을 지낸 조소앙 연구로 석사를, 한국 광복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을 책으로 낸 <한국 광복군 연구>(1993)는 월봉저작상을 받았다. 김준엽·장준하 등 광복군 출신의 회고에 기댔던 기존 연구와 달리 중국 쪽 원자료를 발굴해 광복군 조직과 인원, 미국 오에스에스(OSS) 첩보부대와 함께한 작전의 실체 등을 밝혀 광복군 연구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석 달 뒤인 2008년 5월 총리실 산하에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는 바로 건국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써 신문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건국론 비판서 <역사농단-1948년 건국론과 건국절>(역사공간·2017)을 펴내기도 했다. 건국론이 고개를 숙였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건국론의 가장 큰 문제는? “1948년 제헌헌법 속기록에도 건국 이야기가 없어요. 뉴라이트가 건국 대통령이라고 추앙하는 이승만조차 건국이란 말을 쓴 적이 없어요. 이승만은 제헌헌법에 전문을 두고 거기에 임정을 계승한다는 구절을 넣자고 했죠. 건국이라고 하면 미국이 나라를 세워준 꼴이 된다는 게 그의 논리였죠. 그렇게 되면 1919년 출발한 대한민국이 쌓아온 민주주의 역사가 묻힌다고요.” 그가 보기에 건국절 주장은 ‘역사농단’이다. 건국론 배경에는 일제 협력자를 건국 공훈자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시절만 해도 친일파들이 권력을 다 장악했어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제동이 걸렸어요. 그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진상 조사도 했잖아요. (친일파들이) 처음으로 당했죠. 노무현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항해 나온 게 뉴라이트입니다. 일제 협력자가 건국 공로훈장을 받으려면 1919년 만든 임정을 인정해선 안 되겠죠. 그래서 온갖 논리를 써서 임정을 부정하려고 했죠.” 내달 11일은 임정 수립 100년이다. 1990년부터 작년까지는 4월 13일이 임정 수립 기념일이었다. 기념일 정정도 그의 문제 제기로 시작됐다. “기념일 제정 때 참고한 자료에 오류가 있었다며 2006년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죠. 너무 뻔한 건데 한번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가 쉽지 않더군요.” 독립운동에서 임정의 역할을 묻자 그는 “임정은 우리 민족 전체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받았다. “지금 우리는 국민주권 시대, 민주 공화제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 시작이 임정이죠.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 여러 나라가 들어서고 망했지만 반만년 동안 대부분은 군주 주권이었어요. 임정 때 완전히 바뀐 거죠.” 임정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업적은 카이로 회담(1943년 11월)에서 한국 독립 결의를 끌어낸 점이라고 했다. 미·영·중은 이 회담에서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결의했다. “미국과 영국은 카이로 회담 전에 한국을 국제공동관리한다고 뜻을 모았어요. 이 소식을 듣고 김구 조소앙 등 임정 요인들이 장제스를 만나 설득했어요. 이런 노력 끝에 한국 독립 결의가 나왔죠.” 그는 1998년 대만 국민당사를 찾아 임정 요인들과 장제스가 카이로 회담 넉 달 전에 나눈 대화록 ‘총재 접견 한국 영수 담화 요기’를 찾아내기도 했다. △ 한시준 교수가 대만에서 찾아낸 중국 국민당 문건 '총재 접견 한국 영수 담화 요기'의 한 부분. 카이로 회담을 넉달 앞두고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장제스를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 했다. 그는 2011년에 15년 동안 해온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위원을 자진해서 사퇴했다.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취임하고 나서 그만뒀죠. 공적 심사엔 전문 지식이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박 처장이 심사위원을 뉴라이트 계열로 바꾸더군요. 심지어 퇴직 관료도 들어왔죠.”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 거목도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 자체만으로 평가했으면 해요. 북 정권에 참여했다고 빼면 그 사람들의 역할이나 활동은 독립운동에서 제외됩니다. 독립운동이 한 게 100이라면 60이나 70으로 줄어들죠. 45년 8월 일본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이후 행적과 상관없이 서훈해야죠.” 정부가 추진하는 임정 100년 기념사업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기념사업은 ‘100년을 왜 기념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그런데 유관순 열사 서훈 조정이나 음악회·전시회 같은 일에 힘을 더 쏟는 것 같아 아쉬워요. 임정으로 반만년 군주제에서 국민주권, 민주공화제로 바뀌었잖아요. 이런 점이 강조돼야죠.” 2008년 ‘건국기념일’ 저지에 앞장 , “사실 아니니 역사학자로서 당연” 보수정권 10년 연구비 지원 ‘중단’ , 조소앙 선생 조카와 함께 군 복무 삼균사상 배우며 독립운동사 관심 , 원사료 기반 ‘광복군 연구’ 큰 업적 그는 1975년 단국대 사학과에 들어가 석·박사 학위도 모교에서 받았다.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간 군대에서 키웠단다. “조소앙의 아우인 조시원(독립장 서훈) 선생 아들과 군 생활을 같이했어요. 그 친구가 책 <조소앙 사상>(홍선희 작·1975)을 읽어보라고 주더군요. 흥미를 느껴 열심히 봤어요. 제대하고는 조시원 선생을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학부 때 1년6개월 정도 찾아갔죠. 나중엔 조 선생이 저에게 ‘한 동지’라고 하시더군요. 사모님은 싫어하셨어요. 제가 돌아가면 조 선생님이 앓으신다고요. 소앙 선생 자제분(조인제·독립장 서훈) 집에도 1년 이상 다니며 이야기도 듣고 보관하고 있던 자료도 필사했죠. 당시는 얼마나 귀중한지도 모르고 온종일 베꼈어요.” 그가 사학과를 다닐 때만 해도 한국사는 개항기까지만 가르쳤단다. 그러니 독립운동사 과목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지금은 어떨까. “대학 사학과에 독립운동사나 현대사 강의가 들어온 게 90년대 중반 정도 됩니다. 지금도 없는 대학이 있어요.” 갈수록 독립운동 전공자들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덧붙였다. “서울대나 경북대, 부산대 같은 국립대에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정규직 교수가 없어요.” ‘1961년 군사쿠데타, 1965년 한-일 협정, 1987년 독립기념관 개관’. 국내 독립운동사 연구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이라고 했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 나온 독립운동사 연구 저술이 10권이 안 됩니다. 이승만이 물러나면서 독립운동사 연구가 시작되었죠. 한-일 협정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국사편찬위에서 일본 외무성 자료를 모았어요. 일본 강점기에 일경이나 밀정이 보고한 자료가 일 외무성에 많았거든요. 또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뒤 독립유공자 포상을 시작했어요. 그때 원호처(국가보훈처 전신)에서 독립운동가 공적 자료집을 만들기 시작했죠. 독립기념관 개관도 독립운동 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어요.” 임정 연구를 위해선 뭉텅이로 사라진 자료를 찾는 게 시급하다는 말도 했다. “임정 자료가 두 번에 걸쳐 사라졌어요. 윤봉길 의사 의거 당일(1932년 4월 29일) 일경이 2시간도 안 돼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있던 임정 청사에 들이닥쳤어요. 이때 자료를 다 가져갔어요. 임정 요인들은 몸만 빠져나갔죠. 1932년 말에 재일 상하이 영사관이 <조선민족운동연감>을 냅니다. 거기에 청사에서 가져간 압수 문건 목록 980점이 나와요. 그 뒤에는 임정이 문서를 잘 챙겼어요. 해방 뒤 가죽가방 13개에 자료를 잘 담아서 귀국했어요. 그런데 한국전쟁이 나면서 당시 한국독립당 총무과장 조남직이 성북동 집에 보관하던 임정 자료가 송두리째 사라졌어요. 지금 임정 자료는 조소앙 선생 후손이 가지고 있는 게 유일하죠.” 그는 사라진 자료를 20년 이상 추적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자료 환수에 정부가 적극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임정서 이승만은 권한만 누리려 해… 건국론 주장에는 일제 협력자를 건국 공훈자 포장하려는 의도 있어” “국립대에 독립운동사 전공 교수 없어”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거 전까지만 해도 독립운동 지도기관으로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극심한 내분에 시달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가장 큰 책임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있어요. 그는 상해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대통령 노릇을 했죠. 의무는 안 하고 권한만 행사하려고 했죠. 상해에 오고 안 오는 문제로 이동휘 국무총리와 감정싸움을 벌여 막말이 오가고 나중엔 ‘돌대가리’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이승만은 미국에 가서도 임정 정부 조직도 않고 방치했죠. 대통령 자리는 내놓지 않고요. 이승만 탄핵을 두고도 임정에서 분란이 4~5년 이어졌어요. 이승만 탄핵 뒤 그 후유증을 김구 선생이 수습했어요.” 그렇다면 왜 민족진영은 1919년 이승만을 최고 지도자로 추대했을까? “이승만은 자기선전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승만이 1910년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했을 때 윌슨이 이 대학 총장이었어요. 1919년에는 윌슨이 미국 대통령이었잖아요. 이승만은 자신이 윌슨 대통령 수제자라고 과장해 국내에 선전했어요. 당시 한국 독립을 위해 열강에 매달려야 했던 터라 이승만 스스로 윌슨과 막역한 사이라고 하니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죠. 이승만은 하버드대(석사 과정)를 들어갈 때도 자신이 태종 장남 양녕대군 16대손이라는 걸 내세워 입학 허가를 받았어요.”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은 것을 가능하다고 믿고 행동하기’. 그가 생각하는 ‘독립정신’이다. “다른 사람들은 일본은 바위 같은 존재여서 독립운동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어요. 일본에 협력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했죠. 독립운동가들이라고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다고 생각했겠어요. 하지만 결국 불가능한 게 이뤄졌잖아요. 독립정신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 중요한 재산입니다. 우리 민족이 식민 지배와 전쟁을 거쳐 지금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었잖아요. 그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독립정신 자산이 있어 가능했어요.” 퇴임 뒤 계획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 나라가 언제 세워졌는지도 잘 몰라요. 나라가 독립운동 활동으로 이어졌다는 걸 알려야죠. 국군이나 국회가 광복군(1940년 9월17일 창설)과 임시의정원(1919년 4월10일 개원)에서 이어졌다는 걸 알리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지 물었다. “역사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시류에 이용당하거나 시류를 이용하려고 해서 안 됩니다. 역사적 진실을 가지고 학문을 해야죠. 학문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자세를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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