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이종수)은 1967년 개관(전신 중앙박물관)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보급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은 약 4만 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구글아트앤컬처(Google Arts & Culture)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과 홍보팀은 공동으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석주선기념박물관-이달의 유물] 기획특집 기사를 연재한다. 이달에 소개할 박물관 소장 유물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심동신의 금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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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심동신의 금관
심동신(沈東臣, 1824~ ?)은 조선 말기 문신이다. 심동신이 착용했던 금관(金冠)은 196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다. 심동신은 순조 24년(1824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경(士敬)이다. 철종 원년(1850년)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에 급제하였으며 황해도 관찰사, 의금부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냈다. 유물은 심동신이 참판으로 있을 때 착용했던 것으로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7대손인 최우씨가 조복(朝服)과 함께 1948년 석주선 박사를 통해 박물관에 기증하게 됐다.
금관(金冠)은 문무백관이 조복(朝服)이나 제복(祭服) 차림을 할 때 함께 착용했던 관모이다. 금량관(金粱冠) 또는 양관(梁冠)이라고도 한다. 조복은 조선시대 관료들이 나라에 큰 행사나 종묘사직의 제사, 설날이나 동지 등에 착용한 예복이다. 금관과 함께 착용하므로 금관조복이라고 했다.
△ 국가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심동신의 조복
조선시대 금관은 계급에 따라 관 상부의 금색 선인 양(梁)의 수량이 구분되었다. 1416년(태종 16)에 문무백관의 조복 제도를 정한 이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양관은 조복과 제복에 공통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양관은 △1품(5양관) △2품(4양관) △3품(3양관) △4·5·6품(2양관) △7·8·9품(1양관)을 썼다. 왕세자는 강사포에 6양관을 쓰도록 정했다.
금관은 △관무(관의 앞쪽 이마에 닿는 부분) △조복(두 개의 산봉우리 모양의 뒷면 장식판) △양주(정수리를 덮어 뒷면 장식판에 연결되는 굽은 모양) 으로 구성된다. 관의 뒷부분을 관통하는 나무비녀와 관을 머리에 고정시키는 영으로 구성되어있다. 뒷부분 양옆에는 관무의 양 끝을 끼울 수 있는 고리가 달려있어 크기를 조정하고 고정할 수 있다.
심동신의 양관은 종선이 5개인 오량관(五梁冠)으로 높이는 19.7㎝이며 목잠(木簪)과 옥색의 술 달린 끈을 갖추고 있다. 관무와 배면은 문양을 새긴 후 금칠하고 양주는 죽사(竹絲)로 모양을 잡고 흑색 비단을 씌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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