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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독립군’ 설립자 범정 선생 독립 유적지 찾은 대학원 해외학술탐방
분류 이슈
작성자 홍보팀 가지혜
날짜 2024.06.03 (최종수정 : 2024.06.10)
조회수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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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정 선생 60주기 맞아 독립운동가가 세운 유일의 민족사학 정체성 되새겨
만주벌판 설립자 독립정신 아로새긴 2,200Km 대장정
대학원 해외학술탐방, 코로나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재개



독립운동가가 세운 유일의 민족사학. 설립자의 독립정신과 애국충정을 ‘구국·자주·자립’ 창학이념으로 계승한 대학. 국내 대학 최초로 보훈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史」 를 가르치는 대학. 우리 대학은 매번 최초와 유일이라는 수식어로 독립운동가가 세운 유일의 민족사학 정체성을 되새기며 민족애에 뿌리를 둔 인재양성에 매진해 왔다.


범정 장형 선생 60주기를 맞아 이재동 단장을 주축으로 대학원 해외학술탐방단 26명(대학원생 21명, 교직원 5명)은 설립자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았다. 탐방단은 5월 24일(금)부터 28일(화)까지 4박 5일간 중국 요녕성(遼寧省) 심양을 시작으로 길림성(吉林省) 연길로 이어지는 2,200Km의 대장정을 진행했다. 범정 선생이 평생을 실천해온 억강부약(抑强扶弱), ‘강하고 포악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자를 돕는다’는 정신은 기행 내내 탐방단 가슴에 오롯이 전달됐다.

독립운동 시기 범정 선생은 ‘바람의 독립군’이었다.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범정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국내 청년들을 모집해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키는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특수임무를 수행한 탓인지,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대범한 성품 때문인지 범정 선생은 그 어디에도 당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후학들은 이런 이유로 범정 선생을 ‘바람의 독립군’이라 불렀다.

△ 조국의 광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범정 장형 선생의 삶을 되돌아보며 대학원 학술탐방단은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 범정 선생의 정미소에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일본군 헌병수비대. 박성순 학생처장은 허물어져가는 일본군 헌병수비대 앞에서 당시 범정 선생의 독립운동상을 설명하고 있다. 

연길과 백두산 이도백하(二道白河)를 지나 탐방단은 연통산진(烟筒山鎭) 작은 시골 마을을 방문했다. 범정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운영한 정미소 터를 찾은 것. 범정 선생은 정미소에서 벌어들인 돈을 큰 독에 묻어 숨겨두었다가 소만(蘇滿) 국경에서 무기를 구매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일본군 헌병 수비대가 정미소를 모두 불태워 지금은 공터로 남았다. 탐방단은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을 민족과 조국에 헌신한 범정 선생의 독립운동과 단국대학의 설립 취지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 범정 선생은 국내에서 청년을 모집해 심양을 거쳐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키는 역할을 했다. 삼원포 대고산(大孤山) 밑에 1911년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는 10년 동안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독립군 양성 전초기지다. 


탐방단은 삼원포 추가촌(邹家村)으로 이동해 신흥무관학교 터를 방문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이동녕 등 신민회 인사들이 삼원포 대고산(大孤山) 밑에 정착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1911년 6월에 설립한 학교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을 조직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조선의용대·한국광복군의 주요 간부를 대거 양성했다.


△ 범정 선생은 심양에 동순창사가 있던 심양고궁의 동쪽 대로 동순성가에서 독립의 큰 꿈을 품고 망명한 국내 청년들을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 기지로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학생들은 동순성가 표지판을 앞에 두고 범정 선생의 독립운동사를 듣고있다. 

범정 선생은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진 청년들에게 애국사상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독립운동가였다. 조국 광복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만주땅으로 향하는 청년들을 무사히 독립운동 기지로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신흥무관학교로 향하는 청년들은 누구나 서울-평양-단동-심양을 거쳐 신흥무관학교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통과해야만 했다.


△ 범정 선생 일가가 정착했던 단동시 오룡배 지역에 위치한 오룡배역과 (구)오룡배 소학교 터를 찾은 대학원 학술탐방단

탐방단은 범정 선생 일가가 정착했던 요녕성(遼寧省) 단동시 오룡배(五龍背)를 찾았다. 당시 어린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다녔던 오룡배 소학교는 10분 남짓한 거리로 이전한 상태였다. 탐방단과 동행한 박성순 학생처장(사학과)은 범정 선생의 부인과 혜당 조희재 여사가 어린 충식 군의 교복 안감에 국내에서 모집한 독립군 군자금을 숨겨 운반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탐방단은 숙연함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심양에 위치한 9·18역사박물관을 방문한 대학원 학술탐방단
△ 용정에 위치한 명동학교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는 대학원 학술탐방단
△ 항일 투쟁을 벌인 한국과 중국의 독립운동가의 재판을 실시한 려순관동법원전시관에 방문한 대학원 학술탐방단
△ 안중근 의사, 신채호 선생, 한인애국단 등 일본에 저항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려순일아감옥박물관에 방문한 대학원 학술탐방단

△ 려순일아감옥박물관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 전시실을 방문한 대학원 학술탐방단

탐방단은 일제의 침략과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가의 노력을 잊지 않기 만주사변 발생지에 건립한 요녕성 심양시 9·18역사박물관과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고 순국한 대련시 려순의 관동법원전시관, 일아감옥박물관을 방문했다. 탐방단은 해외학술탐방 소감을 노랫말로 개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우린 단국대 학생들 대학원의 친구 / 장형 선생 발자취를 찾으러 온 친구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 장형 선생이 누구냐고 물어봐/ 정말 힘든 질문이야
업적 너무 많아 / 젋은이들 위해 단국대학 세운 위인/ 억강부약 정의로운 선생
독립운동 자금계의 큰손/ 신민회의 비밀스런 요원/ 신흥무관학교 모책
사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건 / 민족사학 이어가는 단국의 아들 딸들

노랫말 개사를 기획한 김민경 양(대학원 전통의상학과, 1기)은 “독립운동가가 세우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대학은 단국대학교 뿐이라는 사실에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라며 “더 많은 단국인들이 범정 선생과 독립운동가의 유적지를 찾아 민족 독립과 자유의지를 더 굳게 다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탐방단을 인솔한 이재동 대학원장은 “범정 선생의 독립운동과 애국충정의 행적은 민족적 자부심이자 창학정신으로 계승한 우리 대학의 긍지다”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한 우리 대학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해외학술탐방은 일회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논문자료 참조] △ 한시준 독립기념관장「개교 6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 범정 장형의 독립운동과 단국대학설립」中「단국대학의 설립정신과 정체성」△ 박성순 교수(사학과, 학생처장) 「개교 6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 범정 장형의 독립운동과 단국대학설립」中「梵亭 張炯의 獨立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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