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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정(梵亭) 장형의 길을 걷다”, 대학원생 해외학술탐방
분류 이슈
작성자 홍보팀 윤영환
날짜 2019.06.11
조회수 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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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28명, 설립자 발자취 1,800Km 대장정 나서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학원생들이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설립자 범정 선생의 발자취를 찾았다. 대학원생 28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이달 2일부터 7일까지 5박 6일간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을 시작으로 요녕성(遼寧省) 대련으로 이어지는 1,800Km의 대장정을 통해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했던 범정 선생의 삶을 되돌아봤다.


▲ 탐방단의 대장정 루트

연길과 백두산 이도백하(二道白河)를 지나 탐방단은 탐방 3일째인 지난 4일 범정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운영했던 정미소 터를 찾았다. 범정 선생은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만주에서 생산된 쌀을 유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무기를 구매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를 눈치 챈 일본군 헌병수비대가 정미소를 모두 불태워 지금은 공터로 남았다.


▲ 길림성 반석현 연통산진 범정 선생이 운영하던 정미소 터(좌)와 이를 불태운 일본군 헌병수비대 건물(우)을 찾은 탐방단

5일 탐방단은 삼원포 추가촌으로 이동해 신흥무관학교 터를 방문했다. 신흥무관학교 교사와 훈련장 터는 중국 동북지역 최대 도시인 심양(瀋陽)에서 250km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항일 무장투쟁의 전초기지로 청산리,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 주요 간부들을 대거 양성했던 곳이었다. 졸업생들은 만주와 중국 본토로 흩어져 의열단과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 광복군 등에 소속돼 일제에 맞서 싸웠다.

범정 선생의 고난과 신흥무관학교의 연결고리는 다음 날 찾은 요녕성 심양시 동순성가(東順城街)에서 찾을 수 있었다. 범정 선생이 평양에서 망명 청년들을 데려와 중간 전달책에 인계한 비밀거점이 이곳이다. 항일무장투쟁을 결심하고 신흥무관학교로 향했던 청년들은 누구나 서울에서 평양-단동-심양을 거쳐 신흥무관학교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통과해야만 했다.


▲ 신흥무관학교 터를 찾은 탐방단                                       ▲ 박성순 교수가 동순성가에서 범정 선생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탐방단은 범정 선생 일가가 정착했던 요녕성 단동시 오룡배(五龍背)도 찾았다. 탐방단과 동행한 박성순 교수는 장충식 이사장이 다녔던 오룡배소학교 앞에서 당시 ‘범정 선생의 부인과 혜당 조희재 여사가 어린 충식 군의 옷 안감 속에 독립군 군자금으로 쓰일 돈을 숨겨 운반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역사적인 현장에서 탐방단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오룡배소학교 정문에서 기념촬영

탐방 5, 6일차에 각각 일본 침탈의 역사적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만주사변 발생지에 건립한 요녕성 심양시의 9.18역사기념관과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고 순국한 대련시 려순의 관동법원과 일아감옥을 방문했다.


▲ 9.18역사기념관(위)과 일아감옥(아래)을 방문한 탐방단 모습

탐방단을 인솔한 이정휘 대학원 교학처장은 “개인적으로도 범정 선생의 삶과 우리 대학의 창학정신의 기원을 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면서 “이번 행사가 일회에 그치지 않고 대학원에서도 꾸준히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