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자 및 설립목적

설립자

범정(梵亭) 장형(張炯) 선생

범정(梵亭) 장형(張炯) 선생
1889.1.18 ~ 1964.12.30
 

범정(梵亭) 장형(張炯) 선생은 보성전문학교에 재학 중 조선총독부 설치에 민족적 울분을 느끼고 학업을 중단한 뒤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 선생께서는 독립운동자금 조달을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민족 자본가들과 접촉, 모금활동을 펼치시는 한편 그들과 깊은 교분을 쌓았다.

혜당(惠堂) 조희재(趙喜在) 여사의 부군이신 박기홍(朴基鴻) 선생과의 우의 역시 이 같은 지사다운 신의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조국 광복 후 사회의 혼란상을 접한 선생께서는 투철한 민족의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하고 계시던 중, 육영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신 혜당 조희재 여사를 만나, 여사의 사재와 뜻있는 독지가들의 자산을 기부 받아 대학 설립에 정성을 다 바치셨다.

개교 후 대학 육성에 매진하셨으며, 1963년 3·1절 기념식전에서는 독립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공로훈장을 수훈하셨다. 그 후 대학발전에 헌신하시다가 향년 76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혜당(惠堂) 조희재(趙喜在) 여사

혜당(惠堂) 조희재(趙喜在) 여사
1892.2.12 ~ 1947.11.3
 

혜당(惠堂) 조희재(趙喜在) 여사는 평소 근검절약과 자립정신으로 가산을 일구는 주부로서 모범을 보이셨다. 부군이신 박기홍 선생은 장훈학교를 운영하시며 윤치호 선생 등을 도와 육영사업을 펼치시던 중 큰 뜻을 펼치지 못하시고 별세를 하였지만, 여사님은 이를 잊지 않고 광복을 기다리셨다.

광복 후 여사께서는 망부이신 박기홍 선생의 뜻을 받들어 교육이 인간을 완성하고 나라의 기본을 세우는 데 요체가 된다는 점을 중시하시어 순수 민족자본을 기반으로 한 대학 설립의 포부를 갖고 계셨다. 여사께서는 일제 치하 독립운동자금 지원 과정에서 교분을 맺어온 범정 장형선생과의 신의를 바탕으로 사재를 쾌척하시어 재단 설립의 기반을 마련하셨다.

혜당 여사는 숙환에도 불구하고 대학 설립에 헌신하시던 중 대학 설립인가를 받은 이틀 후에 끝내 유명을 달리하셨다. 여사의 별세 후 무남독녀인 아정(雅庭) 박정숙(朴正淑) 여사가 뒤를 이어 장형 선생을 도와 대학발전에 힘을 쏟기도 하셨다

 

창학 및 교육 이념

진리와 봉사의 단국인 신념

단국대학의 창학 이념인 구국(救國)ㆍ자주(自主)ㆍ자립(自立)은 설립자인 범정 장형 선생과 혜당 조희재 여사가 체험한 역사적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혹한 일제치하에서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겪은 두 사람은 조국과 겨레의 독립은 결국 민족애에 뿌리를 둔 인재 양성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두 분 설립자는 자신의 역량을 개인이 아닌 나라를 위해 쓰고, 사회적ㆍ역사적 진리를 바탕으로 확고한 주인의식을 실천하며, 이를 통해 개인과 민족공동체가 독립적 자아를 지켜가는 것을 지식인의 사명으로 인식했다.
또한, 이 같은 의식을 실천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야말로 단국대학의 존재 목적인 것이다.

진리와 봉사의 단국인 신념

단국대학은 이 창학 이념 위에 대학인의 보편적인 사명인 진리와 봉사를 교시로 제시하고 있다. 진리 탐구의 수단인 연구와 면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생존수단의 확보에서 더 나아가 인류 공통의 지적 자산과 문화적 전통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 단국인의 신념이다.
특히, 대학인은 지식의 사회 환원은 물론 역사적 전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를 갖고 있다. 지성인으로서 건설적 비판정신과 인격을 도모하고,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이익이 되는 일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은 바로 단국이 걸어야 할 길이며 봉사정신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역사적 진실에 기초한 강한 민족애와 세계의 대학이 공통으로 부여받은 소명을 함께 추구하는 결의와 실천의지, 이것이 오늘의 단국을 있게 한 진정한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