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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2모작 나선 캠퍼스 돈키호테...권일우 씨!
분류 피플
작성자 김창해
날짜 2010.06.22
조회수 7,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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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에 단과대학 수석합격
탄탄한 직장 뒤로하고 몽골어 공부에 푹 빠져
보장된 미래 없지만 공부 통해 정체성 찾아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을 다닌다는 게 쉽지 않네요. 무엇 하나 보장된 것도 없지만 하고 싶던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해요..”

하루하루 일과가 그에겐 도전이고 시련이라는 권일우씨. 교정에서 만난 권일우 씨(단국대 천안캠퍼스 몽골학과 2년, 41세)의 표정은 긴장 그 자체였고 불혹의 녹녹한 연륜이라곤 찾기 힘들었다. 마흔살 나이에 단국대 천안캠퍼스 몽골학과에 입학하며 인문과학대학 수석을 거머쥐었고 이후 1학기 몽골학과 수석, 2학기 단과대학 차석 등 연이어 장학생 대표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만학도가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입학했다는 세간의 이목 집중으로 부담감을 한껏 안고 시작한 캠퍼스 생활이었지만 이제는 주위의 시선에서 조금은 편해졌단다. 캠퍼스 생활 2년차에 접어든 그의 일상이 궁금했다.

“교양강좌 수업이 만만치 않아요. 역사와 언어분야에 나름 자신있다고 자부했는데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수업과 과제, 몽골어 익히기로 하루 일과가 빠듯합니다.” 인터뷰 중에도 동료 학생들의 전화가 연이었다. 몽골어회화 공부에 빨리 오라는 독촉 전화였다. 몽골인 얼지바트 교수가 진행하는 회화 공부 시간이다. 권씨는 얼지바트 교수와 함께 하는 회화 공부가 정규 강좌는 아니지만 전공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반도체 전문기업인 LG반도체(現 하이닉스) 등에서 전도유망한 엔지니어로 생활한지 10여년. 나름 인정받으며 중추역할을 맡았지만 권씨는 항상 직장생활 속에서도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재미도 못느끼고 지내온 10여년의 직장생활은 “의식의 심연에 깔린 새로운 자기 찾기 과정”이었다고 술회했다.

결국 권씨는 2008년 1월 1일 과감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무엇 하나 보장되지 않은 인생 제2막의 출발선에 외로이 섰다. 온실을 벗어나 거친 황토를 밟기 시작한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했고 좋아하는 일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세계사와 문화의 다양성, 영어와 일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몽골에 매료됐고 이후 몽골의 다양성배우기 위해 몽골행(行) 일념으로 공부에 빠졌다.

몽골 관련 자료를 찾던 중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몽골학과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권씨. “무작정 몽골로 가는 것보다 대학 4년간 몽골을 체계적으로 배운 후 몽골에 가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권씨는 이때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대학을 가려면 수능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여년이 지나 영 자신이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권씨는 수능시험과 대학 4년간의 공부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몽골 배우기’를 평생의 업으로 정하고 미련없이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된다. “어렵다는 직장생활보다 대학생활이 더 어려울 것”이라며 자신의 결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 독려했다. 2008년 3월 수능공부의 대장정에 들어선 권씨. 동갑네기 부인 박은경씨는 전년도 수능문제지를 구해 남편 권씨가 풀어보도록 했고 수능고사장 분위기를 집에서 똑같이 연출하며 엄하게 시험감독을 맡았다. 그날 부인은 시험 감독을 너무나 엄격히 해 몸살을 앓았단다.

공부길 나선 것에 대해 부인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냐는 질문에 “생활인으로서 직장을 포기하고 또다른 인생을 찾아나선다는데 누가 쉽게 동의해주겠어요.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했죠. 제가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얘기에 반신반의하더니만 나중엔 큰 조력자로 나서주기 시작했어요. 부인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어 수능 공부에 큰 도움이 됐죠.”

천안캠퍼스 개교 이후 몽골학과 학생이 인문과학대학 수석을 차지하긴 처음 아니냐는 질문에 권씨는 입학 당시 너무 긴장해서 교수님들의 격려 말씀 조차 잘 듣질 못했다고 털어놨다. “긴장되고 떨리고 누군가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에 매사 조심스러웠어요.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에게 저는 작은 삼촌뻘 되는지라 모범도 보여야 하고․․․․․․지금은 휴대폰에 동기생 30명중 20명 이상의 연락처가 입력되어 있을 정도로 서먹함을 털어내고 친해졌단다.


▶ 수업을 같이 듣는 동료들과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권일우 씨(왼쪽 두번째)

쉽게들 생각하는 교양강좌를 권씨는 ‘공부가 쉽지 않다’며 반박했다. 언어와 인문학, 세계사, 문화사 과목을 제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수업시간의 몇 배를 들여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장 다닐 때 토익성적이 좋아 일본에 파견된 적이 있는데 1년간의 파견생활을 통해 일본어를 빨리 습득한 경험이 있었다”며 그때 엄청난 노력을 통해 성과를 맺은 경험과 아울러 자신이 어학에 자질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단다. 권씨의 몽골어 배우기 여정도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입학후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 집을 처분하고 학교 근처인 천안시 안서동에 저렴한 전세를 마련해 부인과 함께 새둥지 생활에 들어갔다는 권씨. 내년쯤 몽골 교환학생을 신청하고 대학 졸업후에는 몽골에 가서 석사, 박사과정을 밟을 계획이란다.

그간 모아둔 돈으로 학비도 대고 근근이 생활하느라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는 권씨. 교수들은 권씨의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연구소 일을 맡겼고 장학 담당직원도 지난 겨울방학에 교내 산학협력단의 굵직한 아르바이트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이성규 몽골학과 교수는 “입학당시에는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심해 교우관계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모두들 좋아하는 학내 스타”라며 “타고난 성실성으로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면 교수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중순경 고조선학회 소속 교수님들과 한 팀을 이뤄 몽골 남부 고비사막 인근을 방문해 유적도 조사할 계획이라는 권씨. 대학 입학후 첫 몽골행 비행기에 오르는 만큼 설레임도 크단다..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중이라 아직 누구에게 인생목표를 말하기 두렵다”는 권씨. “인생 제1모작이 끝났다면 지금은 제2모작의 출발선에 서게 된 셈이죠. 내가 좋아하는 몽골과 관련된 분야의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고 남들에게 또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