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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연구소,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개최
분류 학술
작성자 노현정
날짜 2011.07.05 (최종수정 : 2011.07.06)
조회수 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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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22일, 중국 심양서 한중 공․동 항일투쟁 국제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의 독립운동사 의미 재조명

동양학연구소(소장 서영수)가 1911년 설립된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6월 21~22일 양일간 중국 심양의 9․18박물관에서 한․중 공동 항일투쟁 관련 학술대회를 열었다.


▶ 학술회의 기념사진

동양학연구소가 양국의 대표적인 항일 기념관인 독립기념관과 중국의 9․18박물관과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투쟁을 연구하는 9명의 학자가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운영· 변천· 성과· 영향 등에 대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우리대학의 한시준 교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김주용 독립기념관 연구원, 김병기 한가람역사연구소 연구원 등이 발표자로 참석했다.

특히 한시준 교수는 「신흥무관학교와 한국독립운동」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당시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자인 이회영 일가와 이동녕, 이상룡 등의 행적을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의 표본으로 평가했으며, 신흥무관학교가 독립군을 양성하여 일제에 대항 독립을 쟁취하고자 한 독립운동 전략의 산실이었음과 그 전통이 해방 때까지 이어졌음을 발표해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서영수 동양학연구소장은 “독립운동가이신 범정 선생님이 세우신 우리대학이 이번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우리대학이 계승해온 민족사학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일”이라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우리대학이 가진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중국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추가촌(鄒家街)에 설립되었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 이후 직후 이회영 일가를 비롯한 신민회 인사들이 서간도로 이주하여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약 3,500명에 달하는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이들은 청산리대첩으로 대표되는 1910~1920년대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신흥무관학교와 연관된 독립운동가 및 졸업생들은 중국인과 함께 일본제국주의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한중공동항일투쟁’을 전개하여 서간도지역의 항일투쟁, 나아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