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박성순)은 1967년 개관(전신 중앙박물관)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보급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은 약 4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구글아트앤컬처(Google Arts & Culture)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과 홍보팀은 공동으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석주선기념박물관-이달의 유물] 기획 특집 기사를 연재한다. 이달에 소개할 박물관 소장 유물은 「색동옷」 이다.
▲ 아이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색동두루마기’
조선시대 색동으로 장식된 옷은 돌부터 여섯 살까지 어린아이들이 주로 입던 외출복이자 명절옷이다. 색동은 저고리·마고자·두루마기뿐 아니라 주머니, 실타래 같은 소품에도 활용되었으며, 노랑·초록·파랑·빨강 등 다양한 색을 화려하게 조합해 만들었다.
옛 어른들은 아이에게 새 옷을 지어 입히며 색과 문양에 건강과 미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특히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따른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한 색동옷에는 호환 마마와 같은 액운을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바라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았다.
오방색은 동·서·남·북과 중앙, 계절과 자연의 질서를 설명하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청·적·백·흑·황의 다섯 색이 지닌 에너지를 상징한다. 석주선기념박물관에는 이러한 의미를 담은 오방색 주머니가 다수 소장돼 있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 집안의 유물에서는 옷뿐 아니라 다양한 소품에서도 오방색의 사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오방색 주머니는 각각 동서남북 방위에 맞춰 비단을 배열하고 중앙에는 사각형의 황색 비단을 대어 만들었다. 오색실타래는 긴 실을 오방색과 간색(間色)으로 염색한 뒤 타래를 틀어 묶어 화려하게 꾸몄다. 오행을 갖추어 나쁜 기운을 막으며, 긴 실처럼 돌을 맞은 아이가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01년 11월 14일,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해평윤씨 집안의 한 무덤에서 17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여섯 살 소년의 미라가 발견됐다. 출토 당시 소년 미라가 입고 있던 옷에 깃· 소매·무·섶을 몸판과 다른 색상으로 만들어 준 중치막(조선시대 남자들이 흔히 입었던 외출복)을 보면, 오늘날 전해지는 색동두루마기와 배열과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
색동옷의 특징은 설·추석 등 명절에 입는 아이들의 차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이들은 색동옷에 길상문을 금박이나 자수로 새긴 화려한 모자를 갖추어 입었다.
▲ [왼쪽] 「노래자해서(老萊子解書)」 및 [오른쪽] 환갑을 맞아 색동옷을 착용한 모습
성인이 된 뒤에도 예외적으로 색동옷을 입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환갑을 맞았을 때다.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 여사는 환갑을 맞은 아들에게 색동마고자와 굴레를 직접 지어 주었는데, 이를 ‘노래의(老萊衣)’라 부른다. 노래의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노래자(老萊子)가 일흔이 넘어서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즐겁게 해 드렸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모가 생존한 상태에서 환갑을 맞으면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어 효심을 표현하곤 했다.
“유승목이가 회갑(回甲)인데 … 그의 어머니 윤백영이 81세로 생존한 고로 노래자(老萊子)의 채무반희(彩舞斑戱)하는 형식으로 굴레와 색등거리와 수(繡)버선 입고 장난감 가지고 흔들고 놀고 허리띠 매고 주머니 차고 친족과 보는 사람들이 주머니에 돈 넣어 주었나이다” 윤백영, 「노래자해서(老萊子解書)」 中 (1968)
▲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방문한 아이들이 ‘돌사진 촬영하기’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석주선기념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색동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아이의 무병장수와 평안을 기원한 어른들의 마음이 깃든 생활문화였다. 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전통을 잇기 위해 ‘돌사진 촬영하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돌을 맞은 아이에게 색동한복을 입혀 돌사진을 남기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