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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개교 당시, 최초 학칙을 통해 본 단국대학교 발전사
category 분류 이슈
person_book 작성자 가지혜
date_range 날짜 2025.10.29 (수정일 : 2025.10.31)
visibility 조회수 8294

기획실·단국역사관, 1947년 11월 1일 제정한 최초 학칙 공개
해방 직후 교육이념이 제도적으로 정립돼 가는 단국대 발전사의 뿌리 재조명

 


우리 대학이 개교 78주년을 맞아 기획실과 단국역사관이 공동으로 1947년 개교 당시 최초로 제정한 학칙을 복원해 공개했다. 

 

이번 사업은 1977년 발간한 「단국대 30년 史」의 사료 조사를 통해 확보한 학칙 원문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복원된 최초 단국대학 학칙은 대학 규정시스템에서 열람할 수 있다. (▶바로가기 https://dku.kr/su/qJsOJ3v)


▲ 개교 78주년을 맞아 기획실과 단국역사관이 공동으로 복원‧공개한 1947년 개교 당시 최초의 학칙 [※홍보팀 자료사진] 


이번에 공개된 학칙은 해방 직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도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길러내고자 했던 설립자의 창학정신이 담겼다. 학칙은 우리 대학의 교육이념이 제도적으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개교 당시 학칙은 총10장, 제59조로 구성되어 있다. 제1조에는 “남녀 중견청년에게 법률, 정치, 사학 및 이공에 관한 제반 학술을 교수하며 동시에 확고한 민족의식의 함양과 인격 도야를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여 교육과 인격을 아우른 대학의 교육목표를 제시했다. 
 


▲ 전문부 제1회 법률학과 졸업식 기념사진(첫째 줄 왼쪽부터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 


▲ 전문부 제1회 정치학과 졸업식 기념사진 
 

학칙 내 교육편제(제6조)는 ▲법률학부(법률학과) ▲문리학부(정치학과, 사학과, 물리학과, 수학과) 등 2개의 학부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실제 운영은 1947년 11월 19~20일 양일간 실시된 입학 검정시험에서 정치학부(정치학과, 법률학과)와 문리학부(사학과, 물리학과, 수학과)로 변형해 진행했다. 이는 당시 우리 대학이 4년제 학부와 더불어 2년제 전문부를 병설했기 때문이다. 
 

전문부는 일제강점기 전문학교 출신 인재를 교육하기 위한 제도로, 전문부에 정치학과와 법률학과를 뒀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1947년 첫 입학시험 때부터 학부 편제를 정치학부와 문리학부로 편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대학 전문부는 1949년까지 2년에 걸쳐 운영됐다. 이후 우리 대학의 교육편제는 최초 「학칙」에 정해진 대로 운영됐다. 


▲ 1948년 6월, 전문부 제1회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하는 백범 김구 선생(왼쪽)과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오른쪽)
 

1948년, 백범 김구 선생은 범정 장형 선생 자택을 방문해 학생들에게 축사를 전하며 범정 선생과 단국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하기도 했다.  백범 선생은  “단국대학은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대학이며 학생들은 우리 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길 바랍니다. 첫째도 나라 사랑, 둘째도 나라 사랑, 셋째도 나라 사랑 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범정 아우의 애국애족하는 기풍이 단국대 학생들에게 넘칠 것을 바란다”라고 전해 단국대가 독립운동가가 세운 대학임을 일깨웠다. 
 

최초 학칙에서는 해방 직후 대학 제도의 생생한 현실도 담겨 있다. 입학검정료는 5천 원, 학년별(2개 학기) 수업료는 7만 원으로 명시돼 있다. 입학생은 학과시험, 구두시험, 신체검사를 거쳐 선발됐다. 당시 입학생은 호적초본과 함께 보증인 2명의 서약서를 제출해야 했다. 보증인은 두 명으로 정보증인은 부모나 친족이, 부 보증인은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독립된 생계를 가진 성년자로 명시돼 있다. 이는 학생의 학업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책임을 중요시 했던 당시 고등교육의 시대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안순철 총장은 “이번 최초 학칙의 복원은 우리 대학 창학정신의 원형을 확인하고 이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료로서 큰 의미가 있다”라며 “후학들이 우리 대학의 정체성을 깊이 이해하고, 창학 100년을 향한 새로운 비전을 세워가는 데 중요한 연결점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논문참조] ▲박성순 교수(사학과, 단국역사관장)「환국 이후 梵亭 張炯의 사회교육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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