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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식 명예이사장, 대한체육회 체육상 특별공로상 수상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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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기’ 만든 남북 체육 교류 산증인, 장충식 명예이사장 “스포츠를 통해 인류애 실천하고 남북 민족 화해의 장 열어”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대한민국 스포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9일(목) ‘제70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특별공로상 역대 수상자는 △조양호 前한진그룹 회장(2020) △이건희 前삼성그룹 회장(2021) △조영식 前경희학원장(2022)에 이어 네 번째다. △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대한체육회 체육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 장충식 명예이사장의 특별공로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한 법인 및 대학 관계자들(왼쪽부터 류남훈 법인 사무처 부처장, 차병권 법인 사무처장, 안순철 총장, 장충식 명예이사장, 방장식 법인 상임이사, 김재일 대외부총장) 대한체육회는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평생을 실천한 스포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라며 “88서울올림픽 유치에 기여하고 스포츠를 통해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며 남북 스포츠 화합에 기여하는 등 스포츠를 통한 인류애 실천 공로를 인정해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선정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특히 대한체육회는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평생 교육자로서 국내 고등교육 발전을 이끌며 대한민국 체육 행정과 스포츠 국제교류에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를 향한 장충식 명예이사장의 헌신과 집념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단국대에 비인기 빙상종목인 스키부(1968년)와 빙상부(1976년)를 일찍부터 창단해 동계스포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빙상종목 강국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각종 대학스포츠 단체장(총7개)과 대학스포츠위원회(KUSB)위원장을 역임하며 인재 육성에 기여해 왔다. △ 1989년 10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3차 남북체육회담. 대한민국 수석대표로 참석한 장충식(오른쪽) 명예이사장과 북측 김형진 수석대표가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기를 합의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 평가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장충식 코리아팀 단장(오른쪽)과 평양 공항에 마중 나온 북측 인사. 특히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스포츠를 통해 남북 간 민족화합에 앞장섰다. 1989년에는 베이징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에 대한민국 수석대표로 참석해 남북 단일팀 명칭, 선수단기, 선수단가 등을 합의해 내기도 했다. 1991년에는 탁구‧청소년축구에서 사상 최초로 남북 단일팀 구성을 성사시키며 흰색 바탕 하늘색 ‘한반도기’를 들고 전 세계에 한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알리기도 했다. 1981년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88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이사에 임명되어 실무를 담당했다. 당시 서울은 일본 나고야에 비해 경제·국제외교정세로 뒤쳐저 있었다. 하지만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아랍 국가의 여러 IOC 위원들을 설득해 표를 얻는데 기여했다. 민간 외교관을 자처해 88서울올림픽 유치에 공을 세운 셈이다. △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학술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천안캠퍼스에서 스포츠과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서울올림픽 유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1989)과 체육훈장 청룡장(1990), IOC로부터 올림픽 훈장(1996)을 수훈했다. 대학스포츠 발전에 관심이 높았던 장충식 명예이사장은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선수단장을 연이어 4번이나 역임하기도 했다. 장충식 명예이사장의 노력에 힘입어 단국대는 스키, 빙상뿐 아니라 럭비, 조정, 씨름과 같은 비인기 종목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단국대가 개설한 비인기종목 체육팀은 20개에 달하며 국내 대학 최대 규모다. 또한 △수영 박태환 △태권도 손태진 △레슬링 김현우 △쇼트트랙 김기훈·진선유·이정수·이호응 △야구 오승환 등 수많은 스포츠 스타와 지도자를 배출했다. 시상식은 29일(목) 오후 4시 서울 올림픽파크텔 1층 올림피아홀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특별공로상을 비롯해 국내 체육계에 현저한 공을 세워 체육 발전에 기여한 수상자 107명 6개 단체가 체육상을 수상했다. #단국대 #장축식 #명예이사장 #대한체육회 #특별공로상 [대학뉴스 제보] 죽전 홍보팀 : 031-8005-2032~5, 천안 홍보팀 : 041-550-1061

박원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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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장충식 단국역사문화원장(前 단국대 이사장), 천안시 명예시민증 받아

20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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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식 단국역사문화원장(前 단국대 이사장)이 박상돈 천안시장에게 ‘천안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수여식은 19일 오전 11시 30분 천안시청 시장실에서 열렸다. 장 원장은 천안시에 대학과 종합병원을 설립해 지역의 교육과 보건복지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천안시 명예시민에 선정됐다. 장 원장은 총장 재임시절인 1978년, 천안시에 한국 최초의 제2캠퍼스를 설립했다. 이후 대학들의 천안 지역 캠퍼스 설립이 줄을 이어 천안시가 한국 제1의 고등교육도시로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뒤 이어 단국대병원과 치과종합병원을 설립해 지역민들을 위한 의료복지를 개선하기도 했다. ▲ 장충식 단국역사문화원장(왼쪽)이 박상돈 천안시장(오른쪽)에게 ‘천안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천안시의 성장은 단국대의 역사와 함께 한다. 천안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오랫동안 지역의 교육과 의료 발전에 힘써 주신 데 감사를 담아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장충식 원장은 “천안에 애정을 가지고 대학을 설립한 후 40년 동안 지역을 오가며 발전을 위해 애 써왔는데, 명예시민증을 받으니 기쁘고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장충식 단국역사문화원장은 1967년에 단국대 초대 총장이자 한국 대학 사상 최연소 총장으로 취임해 60여 년 동안 우리 대학의 발전을 견인했다. 한국 최초의 지방캠퍼스(분교)인 천안캠퍼스 설립, 죽전캠퍼스로의 이전 등을 주도하며 우리나라 대학 역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동계 스포츠 발전을 위해 스키 및 빙상 종목에 적극 투자해 우리나라가 빙상 종목의 강국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하며 분단 이후 처음으로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성과를 이루어 내기도 했다. 또한 대한적십자사 총재 역임 당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켜 민족 화해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는 범은장학재단을 운영하며 7,800여 명의 학생들에게 67억 4천여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하는 등 우수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회고록 『시대를 넘어 미래를 열다』, 소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아름다운 인연』 등이 있다.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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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대 장충식 · 제27대 장호성 이사장 이·취임식 개최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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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 장충식 이사장 “신의와 봉사는 내 삶의 기둥” , 신임 장호성 이사장 “오롯이 진리와 봉사의 길 갈 것” 학교법인 단국대학 제26대 장충식 · 제27대 장호성 이사장 이·취임식이 28일(월) 오전10시 죽전 난파음악관 콘서트홀에서 개최됐다. 행사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간소하게 진행됐다. 이·취임식에는 장충식 학교법인 단국대학 전임 이사장, 장호성 신임 이사장, 김수복 총장, 박유철 이사 등 법인 관계자, 이상배 총동창회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으로 60여년간 단국학원을 일궈온 장충식 이사장의 고귀한 지난날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 이· 취임식 행사에 참석한 교내외 인사들이 국민의례 및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 이· 취임식 참석자들이 중재 장충식 전임 이사장 헌정 영상「다시 태어나도 이 길만을-헌신과 사랑의 60년」을 시청하고 있다. “희생·헌신·박애주의 … 위기에도 단국은 중재 선생을 믿었다” 장충식 전임 이사장은 “교육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그 존귀함을 지켜내는 일” 이라며 헌신과 사랑으로 걸어온 60년 교직 인생을 회고했다. 장충식 전임 이사장은 이임사에서 “서른 살 젊은 나이에 단국대 학생과장으로 부임해 예기치 않은 난관과 격량 앞에 대학의 위기를 이겨내려 부단히 애썼다”며 “단 한명의 학생도 정치·사법권력에 희생시키지 않겠다 다짐하며, 학생들을 나라의 버팀목으로 키우는 데 모든 걸 바쳤다”고 밝혔다. ▲ 중재 장충식 전임 이사장이 이임사를 하고 있다. 1966년, 서른다섯 나이로 학장에 취임한 중재 선생은 우리나라 대학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학장이 되었다. 최연소 학장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중재 선생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대학 경영을 시작했다. 특히 중재 선생은 5·16 군사정부에 의해 주간부가 폐교된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자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호소하여 1966년 종합대학 승격 인가를 받아냈다. 중재 선생은 학장으로 부임한 지 꼭 70일 만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중재 선생은 관광호텔이 들어설 천안시의 안서호반을 캠퍼스로 재탄생시켜 우리나라 최초의 제2캠퍼스 시대를 개척했다. 이어 모든 단국인의 염원이었던 의과대학 신설과 병원을 설립하며 지역거점 의료시설을 확충하는 등 지방의 교육·의료 사각지대를 없애는데 일조했다. 특히 중재 선생은 내곡동 부지와 영동 캠퍼스 좌절, 학교법인 부도 등 거센 풍파 속에서도 종합병원을 짓고, 죽전캠퍼스를 신축해 이전사업을 완수했다. ▲ 신임 장호성 이사장이(오른쪽) 장충식 전임 이사장에게 공덕패를 전달하고 있다. ▲ 대학 교직원 및 학생 대표들이 장충식 전임 이사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중재 선생은 대학 경영이라는 바쁜 여정에도 인간애를 전하고 봉사의 꽃을 피우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특히 중재 선생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회담 차석 대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구성 회담 수석대표, 2000년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나서 남북 이산가족상봉사업 등을 성사시키며 전 세계에 남북 한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확인시켜줬다. 중재 선생은 “우리 대학은 광복 후 열강의 지배와 분단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정치 권력의 압력 속에서도 설립자의 강인한 교육 의지와 성숙한 지성의 힘으로 민주적인 학사운영에 앞장서 온 대학”이라며 “신임 장호성 이사장, 김수복 총장,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는 교수님과 교직원 선생님, 23만 동문과 학생이 함께 힘을 모아 전통과 혁신의 기치를 향해 새로운 대학 혁신의 길을 찾도록 노력해 달라”고 밝혔다. 이어 “화해와 관용의 정신을 실천하는데 헌신한 넬슨 만델라 선생의 정신을 고취하는 사업에 여생을 주력하고 싶다”며 “교정 안의 젊은 청년들이 박애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며 아름답게 꽃피우길 희망 한다”고 당부했다. (이임사 전문 붙임 참조) ▲ 장충식 전임 이사장이(왼쪽) 신임 장호성 이사장에게 법인기를 이양하고 있다. 신임 장호성 이사장이 참석자의 뜨거운 박수에 화답해 힘차게 법인기를 흔들고 있다. 신임 장호성 이사장, “미래 교육혁신 위해…법인 산하 안정적 재원 확보에 전력” 신임 장호성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오늘날 단국대학은 지난 60여년 장충식 전임 이사장의 부단한 인내와 겸손,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으로 일궈낸 결실”이라며 “본인에게 부여된 소명과 책무를 절감하며 김수복 총장,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는 교수님과 교직원 선생님, 23만 동문과 학생 여러분과 함께 진리와 봉사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 신임 장호성 이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신임 장호성 이사장은 2008년부터 지난 11년간 총장으로 재임하며 약학대 유치, 죽전·천안 캠퍼스 통합, 학문단위조정, 캠퍼스별 특성화전략(죽전 IT·CT, 천안 BT·외국어), 산학협력 활성화 등 고등교육의 새 모델을 제시해왔다. 신임 장호성 이사장은 총장 재임 당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탁월한 외유내강 리더십을 발휘하며 미래지향적 변혁에 대비할 새로운 기반을 만들었다. 이러한 결실로 단국대는 산학협력, 소프트웨어, 창업 분야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진 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 이상배 총동창회장이(오른쪽) 신임 장호성 이사장 내외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신임 장호성 이사장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 4차산업혁명,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한 교육 혁신 등 단국대학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할 것을 약속했다. 취임사를 통해 신임 장 이사장은 “대학 법인의 기본 소명인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법인 산하의 다양한 사업장과 부속병원의 수익 증대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신임 장호성 이사장은 교육과 보건시스템을 갖춘 ‘스마트 단국학원’ 구축을 위해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및 특수학교, 죽전·천안캠퍼스, 제3캠퍼스, 학교아파트, 병원 및 치과병원, 요양병원에서 추모공원에 이르기까지의 시스템을 완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신임 장호성 이사장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교육 및 연구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법인·대학·부속병원이 유기적으로 동일한 기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발전목표와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전했다. 더불어 병원의 SI사업과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구축에 앞장서 원격진료사업, 의료관광, 데이터 가공사업 발전을 유도하고, 의학 및 보건계열의 교육·연구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신임 장호성 이사장은 “설립자의 정신이 깃든 단국학원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고 더 나아가 중재 선생께서 평생을 실천해 온 인본주의, 민족에 대한 사랑, 남북 분단 극복에 대한 희망의 가치를 현실화 하는데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취임사 전문 붙임 참조) 한편 김수복 총장은 신임 장호성 이사장에게 「도전과 창조의 여정」을 봉정했다. 이 저서는 신임 장호성 이사장이 2008년부터 지난 11년간 총장으로 재임하며 이뤄낸 △교육 △연구 및 산학협력 △국제화 △지역친화대학 △대외협력 등의 성과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김수복 총장이 송덕사를 하고 있다. 김수복 총장, “중재 선생님,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큰 스승! 숭고한 헌신과 집념으로 그늘진 곳,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 베푸는 자애로운 어버이 ” 김수복 총장은 송덕사를 통해 “중재 선생님은 단국의 큰 스승으로, 우리 시대 지성인으로 민족의 안위를 염려하고 국가와 사회의 번영을 염원하며 시대를 넘어 평화와 화합의 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 하였다”며 “숭고한 헌신과 집념으로 그늘진 곳,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자애로운 어버이였다” 고 밝혔다. 이어 “상처 많은 젊은이들을 어루만져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고, 방황하는 제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큰 어른이다”라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제26대 장충식 · 제27대 장호성 이사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내빈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편 학교 법인은 지난 18일(금) 이사회를 통해 “장호성 박사가 총장 재임 당시 대학 구성원 간 화합을 도모하고 풍부한 교육경험과 탁월한 경영 능력을 통해 대학 발전을 견인한 업적을 인정해 이사장으로 선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재 장충식 이사장 이임사 전문 바로가기 신임 장호성 이사장 취임사 전문 바로가기

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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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장충식 이사장, Holy Spirit’s Man Medallion 수상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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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신앙 아래 대학교육 저변확대와 남북평화 구축 헌신 공로 상금 전액 범은장학재단에 쾌척 ▲ 장충식 이사장(오른쪽)이 '홀리 스피리츠 맨 메달리온' 심사위원장 소강석 목사(왼쪽)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충식 이사장이 대한민국 고등교육 저변확대와 지속적인 육영사업, 스포츠를 통한 남북평화 구축 공로로 세계성령중앙협의회의(대표회장 이수형 목사)의 메달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세계성령중앙협의회는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성령센터에서 장 이사장이 성령의 삶을 살면서 교육부문에 크게 헌신했다며 ‘제16회 홀리 스피리츠 맨 메달리온(Holy Spirit’s Man Medallion)-교육자 부문’ 수상자로 선정하고 메달을 수여했다. 목회자부문은 이승희 목사(대구 반야월교회)가 선정됐다. ‘홀리 스피리츠 맨 메달리온’ 심사위원회(위원장 소강석 목사)는 “장충식 장로는 단국대 교수, 총장, 이사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교육저변 확대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특히 “국내 최초로 천안에 제2캠퍼스를 설립하고 대학병원을 세워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려는 학생들을 ‘진리 봉사’ 정신을 함양한 인재로 길러냈다”고 했다. 또한 “1986년 남북체육회담 한국대표,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단장, 2000년 제1차 남북이산가족상봉단 단장 등을 맡아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 '교육자 부문'을 수상한 장충식 이사장(오른쪽)이 '목회자 부문' 수상자 이승희 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장 이사장은 “이 메달이 교육자인 저에게 주는 새 출발의 격려라 생각하기에 감히 수상한다”며 “지혜로운 인간을 양성하고 인재를 길러내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장 이사장은 상금 300만원 전액을 범은장학재단에 기부해 우리 대학 학생의 장학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안준배 세계성령중앙협의회 이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상은 주목할 업적을 이룬 성령의 사람들에게 시상하고자 제정되었다’고 밝혔다. ▲ 제 16회 홀리 스피리츠 맨 메달리온 시상식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왼쪽 다섯 번째 장충식 이사장)

문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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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장충식 이사장, 헝가리 십자공로훈장 수훈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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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헝가리 대학과 학술문화 교류 공로 교수 파견, 한국학강좌 지원, 한국전통무용 전파에 힘써 11일,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대사가 죽전캠퍼스에서 직접 수여 장충식 이사장이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1989~2019. 수교일 : 1989.2.1)을 맞아 헝가리 정부로부터 양국 간의 대학교육과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헝가리십자공로훈장(The Commander’s Cross of the Order of Merit of Hungary)’을 받았다. 십자공로훈장은 헝가리 정부가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이다. 우리 대학은 한국과 헝가리가 수교한 이후 헝가리 대학들과 교류를 맺은 최초의 대학이다.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가 11일(월) 오전 11시 죽전캠퍼스 난파음악관 리사이트홀에서 직접 장충식 이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 장충식 이사장 헝가리 십자공로훈장 수훈식 기념촬영(왼쪽부터 장호성 총장, 장충식 이사장, 초머 모세 주한헝가리대사)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를 통해 “헝가리는 1989년 사회주의 국가 중에선 최초로 대한민국과 외교 수립을 맺었다”며 “그 당시 장충식 이사장께서 헝가리 대학과 교류 관계를 맺으며 30년 동안 양국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했기에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의 이름으로 오늘 십자공로훈장을 드린다”고 훈장 서훈의 취지를 설명했다. ▲ 초머 모세 주한헝가리대사(왼쪽)가 장충식 이사장에게 십자공로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장충식 이사장은 답례사에서 “1989년, 노벨상 수상자를 2명이나 배출한 헝가리 부다페스트공과대학과 교류 협력을 체결했고, 자매대학의 열악한 재정 타파를 위해 한국 정부에 500만 달러에 이르는 지원금도 요청했다”며 “단국대생 3명이 처음으로 헝가리에 발을 디딘 후 현재는 한국의 30여 개 대학과 100여 개 기업이 헝가리에 진출, 2천명이 넘는 교민사회를 형성했다”고 했다. 장 이사장은 “저의 노력을 가치 있게 평가해주신 헝가리 정부와 초머 모세 대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앞으로도 양국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답했다. ▲ 장충식 이사장이 답사를 통해 30년 전 헝가리 대학과 처음으로 교류를 맺을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충식 이사장은 총장 재임시절인 198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공과대학과 자매결연을 체결한 이후 현재까지 국립엘떼대학교, 세멀바이스의과대학, 페이츠대학과 연이어 교류협력을 확대해왔다. 장충식 이사장은 양국간의 실질적인 협력증진을 위해 단국대 교수를 파견하고 학생교환, 현지 한국학강좌를 지원하는 등 학술교류를 꾸준히 지원해왔다. 지난 2014년과 2016년에는 한국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단국대 한국무용단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파견하여 공연을 여는 등 양국의 친선우호에 크게 기여해왔다. ▲ 이날 행사에는 장충식 이사장의 수훈을 축하하기 위해 내외빈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서훈식에는 장호성 총장을 비롯하여 김수복 천안부총장, 강대식 대외부총장, 이명철 특임부총장, 어진우 산학부총장 등 교내 인사와 윤석기 총동창회장, 박유철 이사 등 외빈 300여명이 참석해 장충식 이사장의 훈장 수훈을 축하했다.

문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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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장충식 이사장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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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체육교류 산증인 장충식 단국대 이사장 “한반도 문제, 천천히 빠르게 가는 지혜 발휘해야” 90년 남북 체육회담 이끌며 흰색 바탕 하늘색 한반도기 만든 주역... “미국이 체제 안전 보장해 주기 전에 북한은 핵 포기하지 않을 것” 시사 저널 <월간중앙>(중앙일보 자매지)이 2019년 신년호(1월호)에 장충식 이사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과거 남북 체육교류 최 일선에서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평화 정착을 위해 애쓴 장충식 이사장의 다양한 활동을 회고담 형식으로 담았다. 인터뷰를 통해 장충식 이사장의 영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나름의 혜안과 삶의 철학이 엿보인다. 다음은 게재 전문(월간중앙 2019.1월호 144~150면) [글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사진 박종근 기자(월간중앙 2019년 1월호)] ▲ 장충식이사장이 지난 7일 월간중앙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2월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단일팀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입장했다. 역사적인 장면을 보던 장충식(87) 단국대 이사장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28년 전인 1990년, 남북 체육회담을 이끌며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기를 만들었던 남북체육의 산증인으로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남북 관계는 급진전했다. 4월에 열린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9월 평양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장 이사장은 “체육회담처럼 서둘지 말고 단계적으로 가야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 체육회담 대표와 베이징 아시아경기(1990년) 단장,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 단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해 남북 관계에 정통한 장 이사장을 만났다. 인터뷰 약속을 한 12월 7일 한파가 몰아쳤다. 그런데도 장충식 이사장은 오전 10시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지런하게 사람을 만나는 생활습관이 평생 몸에 밴 것이다. 사재를 헌납해 만든 강남구 언주로에 있는 범은장학재단에서 만난 장 이사장은 정열적이고 논리 정연했다. “스포츠와 음악은 가장 비(非)정치적이어야 하는데 남북 관계에서는 그렇게만 작동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 북미 간 힘겨루기는 어떻겠어요? 천천히 빠르게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미수(米壽)를 앞둔 나이지만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꿰뚫는 장 이사장의 혜안과 열정이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 남북 체육 단일팀을 성사시킨 장본인입니다. 평창올림픽도 감개무량하셨을 텐데 격동의 해였던 2018년의 남북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적화 통일이 목표였다. 남북 간 불신의 골이 깊어졌는데 그걸 스포츠를 통해 어느 정도 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평창올림픽 때 남북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고 격려한 것, 그걸 계기로 긴장 관계가 완화되고 정상회담이 열린 건 큰 성과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보수적 입장에선 위험 부담이 크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북한 사회는 특수성이 있다. 북한의 지도자는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적다. 그가(김정은 국무위원장) 모든 것을 정하는 것처럼 권위를 내세우지만, 그 뒤에 움직이는 세력(북한 엘리트)들은 남북 간의 소통에 위험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해왔지만 그들은 3대 세습을 하면서 폐쇄적이었다. 너무 독촉하면 안 된다.” " 북한, 핵 포기 이후 방어수단 없어 버티는 것" ○ 남북 관계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보가 관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폐기를 주장하지만, 그가 영구 집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트럼프 말만 믿고 핵을 폐기했다가 나중에 중국이 ‘너 왜 배신해?’라고 하면서 ‘나 몰라라’ 하면 북한은 큰일 난다. 극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런 역학 관계를 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술책에 넘어가고 있는 게 아니냐’고도 한다. 일례로 군사분계선의 시설물을 폐기하고 남북철도를 연결하는 것에 대해 의심도 한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선 핵을 폐기 이후의 방어수단이 없다. 그래서 버티는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 북한이 우리나라와 미국을 의심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핵 시설을 다 없애려면 북한 공산주의자와 좌파 세력들을 설득할 ‘한방’이 필요한데 미국이 안 주고 있다. 트럼프는 공화당 틈바구니에 있다. 트럼프가 하는 이야기를 보라. 미국 돈으로는 북한 경제 도와주지 않을 테니 한·중·일이 맡으라는 것 아닌가. 북한이 빈손이 됐을 때 경제 투자나 경제개발을 안 해주고 북한 체제를 없애려고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건 당연하다.” 장 이사장은 꼿꼿한 자세로 말을 이어갔다. 잠시 회상하더니 89년부터 90년까지 이어진 남북 체육회담 얘기를 꺼냈다. 그는 남북 체육교류를 통해 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우승과 제6회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소년축구대회 8강을 일궈냈다. ○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88년 12월에 북한이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북 단일팀 구성 회담을 제안했다. 당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회담 수석대표로 임명했다. 노 대통령이 ‘당신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선친은 북한 태생이니 잘해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해서 맡았다. 89년 3월 첫 회담을 시작으로 90년 2월 9차까지 남북 간에 밀고 당기기가 치열했다. 회담이 9차에서 결렬되긴 했어도 성과가 컸다. 그때 한반도기를 만들었다.” ○ 한반도기를 둘러싼 대립은 없었나요? “단일팀 단가(團歌)는 남북이 아리랑을 제안해 이견이 없었다. 단일팀 명칭 ‘코리아’와 영문 표기는 우리가 제안한 것을, 단기(團旗)는 북한이 제안한 것을 택했다. 우리는 흰색 바탕에 녹색을, 북한은 하늘색을 주장했다. 두 가지 색을 합칠 수는 없었다. 한쪽은 양보해야 하니까 마음 편하게 양보했다. 남북관계도 그런 식으로 하면 좋겠다.” ○ 당시 북한이 어려운 상황에서 체육회담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이지요? “북한은 우리에게 매달리는 입장이었다. 동유럽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김일성과 가까웠던 루마니아 대통령이 국민에게 처형당했다. 소련이 루마니아 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한 것처럼 북한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체육으로 관심을 돌려 화해 무드로 가려고 북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지금의 남북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 차근차근 진행하자는 말씀이지요? “북한의 입장을 이해해가면서 대화를 풀어나갔다. 60% 양보하고 40% 양보를 받았다. 비용도 반반씩 부담하려 했는데 북한은 체육복 같은 것을 만들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가 연습비를 주기도 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평양에 8차례 다녀와...단일팀처럼 핵문제 단계적으로 풀어야" 평창올림픽 여자 단일 아이스하키팀을 계기로 남북 단일팀이 연달아 성사됐다. 지난 5월 스웨덴 세계탁구대회 여자 단체전을 시작으로 7월에는 코리아오픈 남북 복식팀, 8월에는 남북통일 축구대회, 9월에는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와 조정·카누 단일팀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새해 2월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공동개최 의향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단일팀이 올림픽 공동 개최 추진으로 진화한 것이다. ○ 남북 단일팀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북한 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현 정권 인사 중 과거 북한을 다뤄본 사람이 거의 없다. 나는 북한을 여덟 번 다녀왔다. 2015년 이희호 여사와 갔던 게 가장 최근의 일이다. 북한 사람들하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사람들을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그만이지만 북한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얼음 밟듯이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한다. 깨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걸 문 대통령이 하나씩 설득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은 약속을 잘 깨는데 ‘왜 관계를 개선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강경파도 있다. 이해해 주면서 가야 한다.” ○ 성급해선 안 된다는 말씀 같습니다. “미국이 체제 안전을 보장해주기 전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제재를 풀어주든, 경제개발을 약속하든 구체적인 안이 나와야 한다. 김정은이 그런 카드를 갖고 인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이 ‘핵을 포기하라’고 다그치는 건 북한 체제를 너무 모르는 거다. 트럼프가 북한 사람들을 어떻게 알겠나?” <왼쪽 사진>1989년 10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체육회담. 남측 장충식(오른쪽)수석대표와 북측 김형진 수석대표가 흰색 바탕에 하늘색 지도를 넣은 한반도기에 합의한 뒤 깃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 사진>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구성 평가전 남측 장충식(오른쪽)수석대표와 북측 김형진 수석대표(왼쪽) 위해 평양을 방문한 장충식 코리아팀 단장(오른쪽). 왼쪽은 평양공항에 마중 나온 북측 인사. ○ 경제제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측 인사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같은 민족 아니냐. 우리를 굶길 거냐?’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굶기는 건 이질적이라서 그렇다 해도, 남한은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을 뿐인데 먹고사는 건 좀 해결해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얘기다. 민족 생존에 대한 도덕적 책무를 지라는 인식이 있다. 이희호 여사와 함께 방북할 때 보청기 200개를 갖고 갔다. 북한에도 노인이 많은데 회의 때 잘못 듣더라. 보청기가 필요해도 공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은밀히 가져다 줬다. 링거도 부족하다. 야매 시장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걸 산다. 진통제도 우리처럼 쉽게 구할 수 없다. 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진통제가 없어 난리다. 그래서 링거도 2000개 가져갔다.” 장 이사장은 “북한 측 자존심을 생각해서 발표를 안 했다”고 했다. 응급차도 배로 4대 보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북측이 자존심 상해 한다는 것이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조상 밑에서 자랐는데 이렇게 치사하게 망신을 줄 수 있느냐고 오해한다는 얘기다. 이희호 여사와의 인연은 이 여사가 젊은 시절 유학 갈 때 선친이 도와준 게 계기가 됐다고 했다. ○ 박근혜 정부 때는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는데요. “정부 측에 아무것도 안 보냈다. 그래서 구호품을 가져왔다는 말도 못했다. 정부가 작은 쪽지라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평양 갔다 와서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냉정하더라. 박근혜 대통령은 나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북에 대한 시각이 너무 좁다는 걸 느꼈다.” "남북 문제 해법, 만델라 정신에서 찾아라" 남북 관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급변하고 있다. 한반도에 화해 무드가 형성되고는 있어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장 이사장은 '넬슨 만델라 정신'을 강조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 헤이트’에 저항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간 수형 생활을 한 만델라(1918년 7월 18일~2013년 12월 5일)의 화해·용서·평화 정신이다. ○ 만델라 정신을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세계적인 정치지도자 중 가장 혹독하게 형벌을 받은 분이다. 탄압을 받은 인사들은 위치가 달라지면 증오의 반격을 한다. 하지만 만델라는 자신을 억압했던 이들을 용서하고 포용했다. 김대중(DJ) 대통령도 큰 영향을 받았다. DJ가 만델라에게 손목시계를 선물 받았는데 김대중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남북은 인종 문제가 아닌 정치적 이념으로 분단됐다. 만델라는 한국전쟁을 겪은 한민족이 갈라져 사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용서해야 평화가 이뤄진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마음인데 우리가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만델라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 동족상잔을 일으킨 북을 쉽게 용서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KAL기 폭파 사건도, 천안함 사건도 다시 꺼내서 사과하라고 한다. 점진적으로 참고 인도해줘야 하는데 무조건 다그쳐선 안 된다. 북미 회담이 잘 안 되는 것도 처음엔 OK하고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선언만 했을 뿐 후속 조치가 없다. 말만 했지 책임질만한 언급이 없었다. 트럼프가 동맹국이 아닌 장사꾼 입장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재선을 위해 한반도를 이용하는 것 같다. 지금 이런 처지를 누가 만들었는가? 미국과 옛 소련이다.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 만델라와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지요? “개인적인 연은 없다. 미래를 향해 나가려면 만델라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10월 31일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단국대 난파음악관에서 열었다. 아프리카 12개국과 유럽 6개국, 아시아 및 중남미 7개국 등 32개국 주한 대사와 외교관 100여명이 참석해 만델라 정신을 기리고 추모했다. 만델라는 생전에 음악을 사랑했다. 음악을 통한 자유와 단결의 힘, 하모니의 아름다움을 설파한 분이다.” 만델라는 음악의 힘으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왔다. 88년 6월 11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는 만델라 고희(古稀) 축하 콘서트가 열렸다. 스티비 원더와 조지 마이클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 80여 명이 공연했고,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콘서트 시민운동이었다. 콘서트 이후 석방 여론이 들끓었고, 마침내 만델라는 2년 뒤인 90년에 자유를 되찾았다. ○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직접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노주코 글로리아 밤 주한 남아공 대사가 행사 끝 무렵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더니 나를 무대 위로 이끌어 오르게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아리랑을 불렀는데 관객이 모두 따라 불렀다. 만델라의 화합과 관용 정신이 울려 퍼진 듯했다. 얼마 전 만델라 국제평화대학원을 설립키로 결정했는데 새해 하반기쯤 열 예정이다.” 민족 대표 33인 뜻 살리려 평화통일단체총연합 창립 장 이사장은 음악 애호가다. 바이올린·클라리넷·플루트 연주 실력은 프로급이고 성악은 CD까지 냈다. 남북 간 체육·음악 교류가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큰 동력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2017년 7월 통일 관련 단체 대표 33인과 함께 '평화통일단체총연합'도 창립했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정신을 계승해 한반도 통일과 완전한 광복을 실현하는 데 힘을 보태자는 취지에서다. ○ 평화통일단체총연합의 이사장을 맡고 계시다. "7·4 남북 공동성명과 이산가족 상봉실현,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국회회담, 남북 체육인 회담과 단일팀 구성 등에 참여했던 분들이 주축이 됐다. 경륜을 발휘해 작금의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문화교류와 의료지원, 산림녹화 등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장 이사장은 2000년 제1차 남북이산가족상봉 단장을 맡은 데 이어 제21대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지냈다. 적십자사가 학생과 사병들이 헌혈한 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말을 듣고 “국민 피를 판 돈으로 총재 월급을 주느냐”며 월급을 받지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 대한민국 체육계의 거물인 장 이사장은 평생을 교육자로 일해 왔다. 독립 운동가인 장형 선생의 아들로 1932년 중국에서 태어난 그는 원적이 평안북도 선천군이다. 35세 나이였던 1967년에 종합대로 승격한 단국대 초대 총장으로 취임해 93년까지 26년간 학교를 이끌었다. 국내 최연소 종합대 총장이었다. 현재도 학교법인 단국대 이사장과 범은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스포츠나 음악과는 달리 남북 교육교류는 진척이 더딥니다. “이데올로기와 상관없는 분야부터 해야 한다. 언어 문제가 대표적이다. 남북 간에는 언어 장애가 있다. 내가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만들었는데 용어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북한 인사들과 회담할 때 보니 소통에 어려움이 있더라. 예를 들어 북한에선 사인을 ‘수표’라고 한다. 수표는 손으로 하는 표시라는 뜻이다. 북한 인사들은 ‘사인은 영어, 서명은 일본말인데 왜 그런 용어를 쓰느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주체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남북 간 언어에 대한 교육이 딱히 없으니까 회담을 하다가도 자꾸 묻게 되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언어를 만들었는데 우리는 컴퓨터 용어나 외래어를 그대로 쓴다. 언어 교류는 정치와 상관이 없다.” ○ 교육자로서 평생을 보내셨습니다. 단국대가 올해(2018년)로 71주년인데요. “단국대는 1947년 11월 3일 선친이 세우셨다. 아버님은 백범 선생님 입장에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군자금을 맡았다. 그래서 단국대 교명에 단군의 자손이라는 이념을 넣었다. 민족의 동일성을 담아 통일된 국가의 미래 교육을 주창한 것이다. 49년에 백범 선생님이 암살당하자 그 피해가 아버님에게 돌아왔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단독정부를 반대한 대학으로 찍히니까 학교를 못 짓게 했다. 아버지가 반민특위 위원이었는데 당시 친일 세력 중엔 군부 출신이 많았다.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이들이 요직을 차지하더니 학교를 없애려 했다. 장면 박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반혁명 분자로도 몰았다. 61년 폐교됐다가 67년에 종합대로 승격됐다.” ○ 격변의 시기인데 67년 35세의 나이에 대학 총장이 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야간부도 못 돌리는데 죄 없는 학교에 너무 가혹한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자기는 몰랐다고 하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문교부 장관인 문홍주씨를 들어오라고 하더니 단국대도 기준에 맞으면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라고 했다.” ○ 90년대에도 위기가 있었죠? “김영삼(YS)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을 때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돕기가 어렵더라. 전라도 학생과 경상도 학생이 어우러져 공부하는데 어떻게 한쪽을 지원하나. 대학이 선거에 개입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끝까지 버텼다. 그런데 YS가 정권을 잡더니 보복이 가해졌다. 결국 부채를 지고 병원을 못 짓게 돼 부도에 몰렸다. 학교를 없애려고 했다. “정치가 교육에 관여해선 안돼...고등교육 자율 생태계 중요” ○ 교육은 가장 비정치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육이, 특히 대학이 정치에 휘둘리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 문명사적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등교육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대학의 70~80%는 재정적으로 열악하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에 조금만 밉보이면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면 안 된다. 교육에 정치가 들어가면 희망이 없다.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고 규제를 과감히 풀어 자율적인 고등교육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대학이 많이 나올 수 있다.” ○ 역사학을 전공하셨는데 서울대와 단국대에서 학부를 두 번 다닌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역사과 4학년 때 1년 후배인 아내와 연애를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범대 다니면서 연애한다고 단국대 법정학부 정치과로 이적시켰다. 교생실습도 못 나갔다. 아내도 결혼하고선 숙명여대로 갔다. (웃으며) 사범대 체면이 안 선다는 이유였다.” <왼쪽 사진> 장충식 이사장이 30년 만에 완간한 세계 최대 한자사전 <한한대사전> 16권 <오른쪽 사진> 장충식 이사장이 1964년 2월 28일 부인 신동순 여사에게 보낸 편지 ○ 대학을 이끌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뭔가요. “2007년 8월에 서울 한남동 캠퍼스를 경기도 용인 죽전캠퍼스로 옮긴 일이었다. 당시 서울캠퍼스에 있던 93만 권의 장서와 2만2000점의 유물을 트럭 3,147대에 실어 옮겼다. 1만4300t 규모다. 겨울스포츠 불모지인 빙상과 스키 종목 선수를 발굴하고, 럭비와 조정 등 비인기 종목을 키운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장 이사장은 65년 대학배드민턴 협회장을 맡은 이후 국내 대학 스포츠를 이끌어왔다. 대학스키연맹, 대학축구연맹, 대학태권도연맹, 대학농구연맹, 대학테니스연맹 회장 등 안 맡아 본 종목이 없을 정도다. ○ 국가 스포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 나도 대학생 때 럭비를 했다. 서울대 사범대에서 B학점 이상 아니면 선수도 못했다. 단국대는 체덕지(體德智)를 강조한다. 우리 대학 출신들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 등에서 딴 메달만 100개가 넘는다.” ○ 장자인 장호성(64) 단국대 총장은 처음에 숭실대 강사로 일하다 한양대 전자공학과 교수가 됐습니다. 2000년에야 단국대로 옮겼는데 아들이 섭섭했겠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게 했다. 미국서 공부하고 돌아와 한양대에서 8년 있었다. 거기서 1등 교수로 인정받았다. 캠퍼스 이전 계획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계란 세례를 했다. 서울 소재 대학이 캠퍼스를 서울 밖으로 옮긴 전례가 없고 국가 지원도 없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주차할 공간도, 인프라도 부족한 한남동 캠퍼스에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때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캠퍼스 개혁에 힘을 보태라고 했다.” 장호성 총장은 장 이사장의 1남 3녀 중 맏이로 2000년 단국대 교수로 옮긴 뒤 2008년부터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전국 4년제 대학 총장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이기도 하다. ○ 단국대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학연가연(學緣佳緣)’에 나오는 경주 9남매 스토리가 뭉클합니다. “99년 설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TV를 보는데 9남매가 밥상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들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사정을 알아봤다. 당시 7남 2녀 중 맏이인 장녀가 17세였는데 부모가 성실해 밥은 굶지 않지만, 학비가 문제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9남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모든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 뒤로 9남매 중 3명이 단국대에 들어왔다. 큰 아이가 대학원까지 마치고 범은장학재단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 2015년에 『다시 태어나도 오늘처럼』을 출간하셨다. 결혼 60주년인 회혼(回婚)을 기념한 책인데. “집사람과 젊었을 때부터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뒀더니 500여 통이나 되더라. 그중 53년부터 85년까지 주고받은 134편을 추렸다. 사랑 고백 글도 있고, 속바지를 보내달라는 투정도 있고….” "통일되면 아들·손주와 함께 북한 조부 묘소 찾고 싶어" 장 이사장은 그 대목에서 수줍어했다. 평생 반려자의 젊은 시절이 떠오르는 듯했다. 책을 펼쳐보니 “졸렬하고 무지한 이 몸과 넋이 그대 마음의 등불이 될 수 있다면 그대는 이 마음의 영원한 행복의 꽃송이입니다”라는 구절도 있었다. ○ 90년에는 범은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단국대를 세운 선친 범정 장형 선생과 혜당 조희재 여사의 육영의지를 살리기 위해 만든 재단이다. 그동안 1,900명 학생과 교수들에게 68억원을 지원했다.” ○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인가요? "일석 이희승 선생님이다. 서울대 학생 시절 국어를 1년간 배웠다. 한국 최고의 국어학자이자 국학자인 스승은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그런 분을 내가 71년에 단국대의 동양학연구소 소장으로 모셨으니 정권의 눈총을 받은 건 당연하다. 선생님은 약속대로 71년 1월부터 81년 1월까지 10년을 꿋꿋하게 일하시며 한한대사전 편찬의 기틀을 잡아주셨다. 선생님은 돌아가실 때 평생 모은 정재(淨財)를 후학들의 학술기금으로 환원하셨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신 스승이다." ○ 2011년 나온 회고록 『시대를 넘어 미래를 열다』를 보면 "결국 인생은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서 일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또 힘을 모으는 끝없는 순환이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90 가까워지니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많은 사람이 어울려 사는데 똑같은 결론은 죽음이다. 사는 동안 이해관계와 생각에 따라 인간관계가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건 재물은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박애주의이고 기독교 정신이다. 물자에 대한 욕심을 멀리하는 것이 부모님의 가르침이었다. 아버지 유언서에 ‘부모를 통해 얻은 재산은 개인적으로 가지면 안 된다’고 했다.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게 인생이다.” ○ 후손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친손주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서울대 박사과정에 있고, 하나는 제약회사에 다닌다. 둘 다 전세 산다. 아들에게 준 돈이 없으니까 손자에게 갈 것도 없다. 전세살이는 당연하다. 아들도 8년 동안 셋방 살다가 옮겼다. 부모 덕에 있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다보면 사회적 책무를 망각하기 싶다. 내 비서나 기사들의 자녀 교육도 내가 맡았다. 자기 수입으로 적게 먹고 남은 것은 다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소식하고 술과 담배를 안 한다. 큰 형님이 서른여섯에 술로 돌아가셨다. 술은 절대 마시지 말라고 했다. 담배는 잠깐 피우다 끊었다.” 장 이사장은 꿈이 하나 있다. 통일이 되면 평안북도 선천에 있는 조부 묘소를 아들·손주와 함께 찾아가는 일이다. 북한을 여덟 번 갔어도 모두 공적인 일이었기에 찾아갈 수 없었다고 했다. 남북 관계가 스포츠 분야처럼 단계적으로 개선되고, 북한의 핵이 폐기되고, 한반도가 통일이 되기를 소망하는 장충식 이사장의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 장충식 이사장은 1932년 중국 텐진 출생 서울대 역사과, 단국대 정치과, 미국 브릭함영대 졸업 단국대 총장, 대학베드민턴협회장, 대학스키연맹회장, 대학축구연맹회장, KOC부위원장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1989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단장(1990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단장(1991년)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 단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현 단국대 이사장, 범은장학재단 이사장, 평화통일단체총연합 이사장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 교육자가 되려고 고려대에서 영어교육학을 공부했지만 기자가 됐다. 중앙일보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에디터, 논설위원을 거쳤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정책, 특히 문명사적 전환기의 고등교육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 <대한민국 파워 엘리트>와 역서 <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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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 증진 및 교육 분야 헌신'   장충식 이사장, 4·19혁명 대상 수상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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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수) 4·19혁명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수상 남북 교류 증진 및 교육·인도 분야 헌신한 공로 ▲ 장충식 이사장 학교법인 단국대학 장충식 이사장이 18일(수)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가 주최하는 제6회 4‧19혁명 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이날 오전 7시 4·19혁명 정신을 계승하고 이념을 기리기 위한 4‧19혁명 국가조찬기도회(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렸다. 올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 통일을 향한 역사적 대업이 시작되기를 염원한 이번 행사에서 장충식 이사장은 남북 교류 증진 및 교육‧인도 분야 헌신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 됐다. ▲ 장충식 이사장(오른쪽)이 419혁명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사진 출처 : 아시아투데이) 장충식 이사장은 1991년 탁구‧청소년축구에서 사상 최초 남북 단일팀 구성을 성사시키며 ‘한반도기’를 통해 전 세계에 남북 한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알렸다. 2000년 제21대 대한적십자 총재로서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단장을 맡아 이산가족 138명을 인솔해 평양에 방문하며 민족화합에 앞장섰다. 또한 60여 년 동안 대학 교수, 총장 등으로 국내 고등교육 발전을 이끌었고 국제로타리 운동에 참여해 지역사회 개발, 저개발 국가 의료봉사 등에도 힘썼다.

문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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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이사장님이 들려주는 남북한 교류의 현장’ 장충식 이사장 특강 개최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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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 오후 2시 30분 우리 대학 장충식 이사장이 죽전캠퍼스 서관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정치외교학과가 주관하는 통일·안보옴니버스특강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특강에는 수강생을 포함해 교직원, 재학생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통일·안보옴니버스특강은 통일부가 지원하고, 한국 정치학회가 위탁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국 대학생들의 통일의식 고취와 교육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장충식 이사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특강은 ‘이사장님이 들려주는 남북한 교류의 현장’을 주제로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장 이사장은 단국대 총장으로서 1989년 남북체육회담의 남측 대표를 맡았다. 2000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직을 맡아 남북 간 교류 증진 및 대화의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북한주민들의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한·중·일간 국제정세를 현장감 넘치게 전하였다. ▶'이사장님이 들려주는 남·북한 교류의 현장' 특강 전경 장 이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후에도 체육 회담과 스포츠 교류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다. 물론 남북한의 스포츠 교류가 체육을 통한 평화통일 성취라는 순수한 의미만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남북의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많은 갈등이 발생했고 체육 회담과 스포츠 교류 역시 남북 대결과 체제 경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고 전했다. 또한 “남북 체육 회담과 교류는 반세기 동안 분단으로 이질화 되어 있는 한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장 이사장은 대학과 학생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학교생활에 힘겹게 고민하는 학생들과 언제든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상담이 필요한 학생은 주저치 말고 찾아와 달라”고 했다. 또한 “범은장학재단을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 학업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전달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범은장학재단(이사장 장충식)은 1990년 설립됐으며, 단국대 설립자인 범정 장형 선생과 혜당 조희재 여사의 아호 첫 글자를 따 명명했다. 동 재단은 장학사업 외에 우수 교수 연구 장려금 지급, 해외 유학비 지원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장충식 이사장이 특강 후 교직원,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김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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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장충식 이사장, 국립 카자흐스탄예술대 명예 음악학 박사학위 수위

20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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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르바예프국립대, 국립의료원 등과도 교류협력사업 증진키로 우리 대학 장충식 이사장이 국립 카자흐스탄예술대가 수여하는 명예음악학 박사학위를 수위했다. ▶카자흐스탄 국립예술대의 아이만 무싸하자예바 총장(오른쪽)이 장충식 이사장에게 명예 음악학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학위모를 씌어주고 있다. 국립 카자흐스탄예술대 초청으로 지난 3일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장충식 이사장은 5일 간의 일정으로 해당 대학 외에도 국립의료원 및 암진료센터, 나자르바예프국립대 등을 방문해 우리 대학과의 학술, 문화 공동사업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카자흐스탄예술대 측은 장충식 이사장의 방문을 맞아 지난 4일 개최한 환영음악회에서 초청장에는 공개하지 않던 명예음악학 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을 발표해 일행을 놀라게 했다. 이날 음악회에는 세계최대규모인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열렸는데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국립 챔버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민속음악 악기인 돔부라 합주단, 저명 성악가 등이 출연해 고전과 현대를 망라한 높은 수준의 공연을 펼쳤다. ▶박사학위기를 증정받은 장충식 이사장(가운데)이 아이만 총장, 강대식 대외 부총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공연 끝무렵 무대에 오른 아이만 무싸하자예바 카자흐스탄예술대 총장은 “오늘 이 음악회는 장 이사장님이 우리 대학을 찾아 주신 데 대한 감사와 환영의 자리이지만 사실은 제가 존경하는 장 이사장님께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려 준비했다”면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공개하면 사양하실까 염려되어 이 자리에서 깜짝 공개한다”며 즉석에서 학위수여식을 진행했다. 카자흐스탄예술대는 학위기를 통해 “장충식 박사는 단국대 총장,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평소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음악교육 및 인재발굴에 많은 공헌을 해왔다”면서 “앞으로 카자흐스탄과 한국이 음악을 통한 우정을 키우고 양국 문화교류에도 기여해주길 바라는 뜻을 담아 명예음악학 박사학위를 수여한다”고 학위증정 이유를 밝혔다. ▶이날 학위수여에 앞서 가진 환영음악회에서 남성연주가들이 돔부라를 연주하고 있다. 돔부라는 유목문화의 정서를 가진 카자흐스탄을 상징하는 전통악기이다.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성악가들이 연주 뒤에 무대에올라 장충식 이사장의 학위수위를 축하하고 있다. 이날 답가로 부른 아리랑은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장충식 이사장은 “이런 영예로운 자리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치하를 하고 “오늘 공연을 보면서 역시 음악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인간애를 공감케 하는 힘이 있음을 실감했는데 저 역시 백 마디 답사보다는 조촐한 연주로 답례를 하고 싶다”면서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모두 강대국의 억압에서 해방된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이고, 제가 연주할 노래는 이런 역사적 경험이 녹아있는 민요이고 앞으로 한민족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직접 연주하고 싶다”며 민요 가곡 ‘아리랑’을 열창했다. ▶카자흐스탄 최고 명문 대학인 나자르바예프 국립대를 방문한 장충식 이사장이 시게오 카츠 총장을 만나 우리 대학과 교류를 촉진키로 합의하고 약정서를 교환하고 있다. ▶장충식 이사장이 국립 암센터를 방문하고 테칸 다우토프 원장의 안내로 주요 시설을 시찰하면서 단국대 병원, 의과대와의 협력사업 증진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방문을 마친 장충식 이사장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직접 카자흐스탄예술대를 세우고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만큼 예술에 대한 애정이 큰 나라라는 것을 이번에 체험했다”면서 “국립병원과 단국대 병원, 또 해당 대학과 우리 대학 학생, 교수들의 공동 연구나 사업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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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식 이사장, 음악 영재 사랑 따뜻한 결실 맺어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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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이를 처음 만난 게 2013년도였어요. 단국대에 재직 중인 교수님이 바이올린 천재가 있으니 만나보라 부탁하기에 만났죠. 아홉 살짜리 어린이가 이미 절대음감을 갖고 있고, 바이올린을 켜는데 감성이 풍부하고 울림이 있더라고요.” ▶지난해 12월 박지언 양(왼쪽)이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 최연소 입상 후 장충식 이사장(오른쪽)을 찾아 감사인사를 전했다. 장충식 이사장은 3년 전 어려운 환경으로 재능을 꽃피우기 쉽지 않은 박지언 양(11세)의 소식을 들었다. 평소 음악에 조예가 깊고 남다른 음악 사랑을 보여온 장충식 이사장은 당장 박 양 후원에 나섰다. 우선 박 양이 안정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도록 장학금을 사비로 지원하고 각종 대회를 나가는 데 드는 경비도 로타리 같은 봉사단체와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도록 배려했다. 그런 가운데 2년 전부터는 단국대 평생교육원에 예체능영재교육센터를 설치해 박지언 양이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도록 제도화했다. 우리 대학 음대의 김대환 교수(바이올린 전공)는 박지언 양을 특별 지도하는 재능기부를 했다. 박지언 양의 재능과 장충식 이사장의 후원이 맞물리면서 박 양의 성장도 빨라졌다. 박 양의 발전 속도를 들은 장 이사장은 급기야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사용토록했다.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박지언 양.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박 양은 지난해 12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세계적 권위의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해 바이올린 최연소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뉴스1 기사보기 :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 박지언 양, 최연소 입상뒤엔 키다리 아저씨가’ http://news1.kr/articles/?2522373) 이후 박 양은 음악계를 깜작 놀라게 하는 개가를 올렸다. 세계 최고의 영재음악교육기관인 커티스음악원(Curtis Institute of Music)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다. 커티스 음악원은 192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문을 열었다. 전 세계에서 지원한 음악영재가운데 4% 이내의 엘리트를 뽑아 세계 최고의 음악가로 키워낸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명문 음악학교이다. 총 정원이 170여 명인 이 음악원은 학사, 석사과정을 운영하며 졸업 시까지 전액 장학금은 물론 생활비나 개인 연습용 부대 경비까지 학교가 부담한다. 건반악기나 지휘, 작곡 전공 학생들에게는 1억 원이 넘는 스테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를 무상 대여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세계 음악학도의 선망이 되고 있는 명문학교이다. 지난 2월 있었던 입학오디션에서 심사 교수들은 박지언 양이 나이에 비해 풍부한 감성과 곡 해석 능력이 돋보인다는 칭찬을 보냈다. 장충식 이사장은 “이번 커티스음악원 입학을 통해 박지언 양이 바이올린 연주가로서 세계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음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면서 “좋은 교육환경을 갖게 된 만큼 앞으로 더욱 정진해 단국대와 조국을 빛낼 좋은 음악가로 성장하길 응원한다”고 밝혔다.

문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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