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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독립의 새벽을 열다
분류 이슈
작성자 홍보팀 문승진
날짜 2019.07.19 (최종수정 : 2019.07.22)
조회수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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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단 7,500km 독립운동유적지 방문
독립운동 목숨 바친 선열 추모

6월초 대학원생 탐방단이 중국 동북부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은 이후 죽전 재학생 32명도 중국 내 산재한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하는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재학생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은 이달 10일부터 17일까지 대련-단동-길림-중경 등 7,500km에 이르는 말 그대로 대장정이었다.


▲ 출국 전날 서울시에 위치한 백범기념관(위)과 우당기념관(아래)을 찾은 탐방단


탐방단은 출국에 앞서 9일 서울 소재 백범기념관과 우당기념관을 찾아 결의를 다진 후 중국 심양으로 출발해 여순관동법원과 여순일아감옥을 찾아 이곳에서 고통 속에 눈을 감았던 선열들을 추모했다. 특히 이곳은 1909년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곳이다. 안 의사는 여순일아감옥의 형장에서 순국 전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 실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현장을 찾은 탐방단(위) / 고된 여정에도 불구하고 저녁 시간을 활용, 독립운동과 우리 대학 역사 강의(아래)를 실시해 학술탐방의 취지를 더욱 살렸다.


▲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이동녕 선생의 옛집(위)과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가 단둥에 설립해 비밀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 역할을 한 이륭양행(아래)


탐방단은 여순감옥을 거쳐 단동의 동순성가(東順城街)를 찾아 우리 대학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 관련 독립운동 강의를 경청했다. 장형 선생은 보성전문학교 입학 후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박성순 교수는 강의를 통해 “장형 선생은 신민회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신흥무관학교 학생모집을 위한 특무공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만주 독립군부대를 위한 군자금 제공은 물론 태평양회의에 대비한 임시정부 국내 거점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고 강조했다. 장형 선생은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운영했고 전국통일학생총연맹을 조직해 민족통일 운동에 크게 앞장섰다. ‘단국(檀國)’이란 교명도 해방 직후 백범이 추진하던 통일운동의 열망과 시대정신을 담아 남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시조 단군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었다.


▲ 장형 선생이 독립군 자금을 모으기 위해 운영한 정미소 터(위)와 바로 근처에 함께 있었던 일본 헌병대 터(아래)


다음 행선지는 길림성의 연통산진(烟筒山鎭). 현재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지만 해방 전에는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준비했던 곳이다. 이곳에는 장형 선생이 독립 군자금 마련을 위해 운영했던 정미소 터가 있던 곳이다. 장형 선생은 정미소에서 벌어들인 돈을 큰 독에 묻어 숨겨두었다가 소만(蘇滿) 국경에서 무기를 구매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일본 헌병대가 정미소를 모두 불태워 지금은 공터만 남았다. 탐방단은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독립운동과 단국대학의 설립 취지를 되새겼다. 장형 선생 일가가 한때 살았던 단동 오룡배(五龍背)도 찾았다. 장충식 이사장은 이곳 오룡배소학교를 다녔는데 장형 선생은 어린 장충식 이사장의 옷 속에 독립 자금을 숨겨 운반하기도 했다.


▲ 장충식 이사장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룡배소학교


탐방단은 이외에도 △독립군 3,500여명을 육성하며 무장항일투쟁 요람 역할을 했던 신흥무관학교 △윤봉길 의사가 1932년 폭탄을 던져 일본 고관을 즉사시켰던 상해 루쉰공원(당시명은 홍커우공원) △홍커우공원 폭탄 투척 후 김구 선생을 포함한 임정 요인들이 피신했던 저장성의 가흥(당시 김구 선생에게는 큰 금액의 현상금이 걸려있었음) 등지를 방문하여 조국 독립의 새벽을 비추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열들의 발자취를 밟았다.


▲ 상해 임시정부청사(위)와 중경 임시정부청사(아래) 방문 기념촬영


▲ 루쉰공원 내 윤봉길 기념관(위)과 김구 선생 피난처(아래)를 찾은 탐방단


최기환(건축공학과, 죽전 부총학생회장) 군은 “하루에 11시간을 버스로 이동하고 비행기가 지연돼 새벽 2시에 숙소에 도착하는 등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 옛날 대한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 열사들의 고통에 비할 게 아니었다”며 “우리 대학이 왜 ‘구국·자주·자립’의 창학이념으로 세워졌는지 알 수 있었고 민족사학 단국대의 재학생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학술탐방은 필기와 면접으로 재학생 32명이 선발됐고 김형수 학생처장, 박성순 교수(역사문화연구소장), 송덕익 학생팀장, 이기태 과장이 동행했다.

한편,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우리 대학 기념행사는 이달 말에도 계속된다. 천안 학생팀은 오는 24일부터 8일간 재학생 70명과 함께 충남지역의 독립유적지(천안캠퍼스->홍성->청양->공주->천안 독립기념관) 210km를 완주하는 「3.1운동 100주년기념 국토대장정」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