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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학 자부심 커졌다" 장형 선생 및 독립운동가 유적지 찾은 탐방단
분류 행사
작성자 홍보팀 문승진
날짜 2018.07.24 (최종수정 : 2018.07.25)
조회수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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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형 선생이 운영한 정미소 터를 찾은 탐방단


중국 연통산진(烟筒山鎭)의 작은 시골 마을. 동네 어른들이 나무 그늘아래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강아지와 함께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평화로운 곳. 하지만 이곳이 80여년 전, 대한독립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준비했던 곳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지난 16일 우리 대학 학술탐방단이 찾은 이곳은 바로 설립자 장형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운영한 정미소 터다. 장형 선생은 정미소에서 벌어들인 돈을 큰 독에 묻어 숨겨두었다가 소만(蘇滿) 국경에서 무기를 구매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일본군 헌병 수비대가 정미소를 모두 불태워 지금은 공터로 남았다. 탐방단은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독립운동과 단국대학의 설립 취지를 되새겼다.

재학생 60명‧교직원 12명, 8박 9일 동안 연해주~만주지역 답사
여름방학 반납하고 설립자 및 독립운동가 발자취 따라가

탐방단원 “민족사학 단국대 일원인 것 뿌듯해” 입모아

우리 대학은 창학정신을 계승하고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배우기 위해 학술탐방을 실시했다. 필기시험과 면접으로 양 캠퍼스에 30명씩을 선발해 탐방단을 꾸렸다. 김수복 천안부총장, 박성순 교수(동양학연구원 역사문화연구소장) 등 교직원 12명이 동행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7월 10일~19일, 8박 9일 동안 연해주~만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 국외 독립운동의 시초이자 강제이주의 아픔이 남아있는 곳 연해주


▲ 탐방단은 국외 독립운동이 처음 시작된 연해주를 먼저 찾았다. (위)1874년 고려인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처음 정착한 것을 기념해 만든 비석과 (아래)우스리스크에 위치한 고려인문화센터. 최근 연구를 통해 고려인들이 1874년 전부터 연해주로 이주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위)박성순 교수가 라즈돌노예역에서 한인 강제이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는 이곳을 개척하기 위해 고려인들의 유입을 환영했다. 하지만 1937년 강제이주 정책을 실시한 스탈린은 라즈돌노예역에서 고려인 약 172,000명을 기차 화물칸에 싣고 중앙아시아로 이주 시켰다. (아래)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1907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탐방단

■ 통일정부 수립을 기원한 장형 선생의 뜻, ‘단국(檀國)’ 교명으로 태어나


장형 선생은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면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한다.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냐. 남북을 물론하고 단군의 건국정신을 받아들여야한다”며 교명을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단국(檀國)’으로 정했다. (위)탐방단이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두만강을 방문한 장면. 강 뒤로 보이는 건물들은 북한의 모습이다. (아래)대종교3종사 묘역. 당시 대종교는 종교라기 보단 민족 독립운동의 정신이자 무장투쟁과 국사‧국어를 지키는 원동력이었다. 장형 선생 역시 대종교 신자였으며 해방 후 대종교의 가장 높은 직책인 ‘원로원참의’에 올랐다.

■ 독립군 양성의 전초기지 신흥무관학교, 입학생의 비밀은 바로 ‘장형 선생’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대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기관이다. 대고산(大孤山) 밑에 자리한 신흥무관학교 터. 10년 동안 독립군 3,500명을 길러냈다. 장형 선생은 ‘특무요원’으로 불리며 이곳에 학생을 입학시키는 일을 맡았다.

■ 윤동주부터 안중근까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일제에 저항한 이들


(위)일제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시로 표현한 저항 시인 윤동주 생가를 찾은 탐방단. (아래)학계에서 윤동주 시 분석으로 유명한 김수복 천안부총장(문예창작과)이 윤동주에게 화답하며 쓴 시집 ‘밤하늘이 시를 쓰다’를 낭독하고 있다.


(위)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이 순국한 정미소. (아래)하얼빈 731부대 기념관. 한국인과 중국인 등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생체실험을 감행한 일본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위)안중근 의사 전시를 보고 있는 학생들과 (아래)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 저격 후 실제 사형 선고를 받은 관동법원에서 탐방단이 안중근 의사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